금융당국, 내달 경영진 면담 실시



(서울=연합인포맥스) 김예원 기자 = 금융위원회가 혁신금융을 위해 마련한 지정대리인 제도가 금융권의 보수적인 대응 등으로 지지부진한 모양새다.

지정대리인은 금융회사가 핀테크 기업(지정대리인)에게 예금 수입, 대출심사 등 금융회사의 본질적 업무를 위탁해 테스트하도록 한 제도다. 당국은 다음달 중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금융사를 상대로 경영진 면담에 나설 계획이다.

◇ 지정대리인 90%가 수의계약 못 해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2018년 9월 1차 지정 이후 올해 3차 지정까지 총 22건 중에서 금융사와 핀테크사 간에 계약이 실제로 성사된 것은 2건에 불과하다.

3분기 내로 계약 완료가 예정된 5건과 지난달 3차로 지정된 6건을 제외하더라도 9건의 지정대리인이 수의계약을 제대로 진행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핀테크 업체는 수의계약을 맺지 못하면 회사 직원을 상대로 테스트를 진행하거나 기존 데이터 기반의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만 가능할 뿐 신규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테스트를 할 수는 없다. 실질적인 서비스 제공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분석안에서 "지정대리인 지정 이후 실제 위탁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책임 분담 등 사업 주체 간 이견이 발생함에 따라 계약 체결이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들도 사업 실적이 없는 핀테크사와 협력하는 것에 대해 리스크가 만만치 않다는 입장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은 어디까지나 금전에 대한 부분을 위탁해주는 것이니만큼 검증이 안 된 부분을 상용화시키는 것이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면서 "결국은 리스크를 은행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은행 내부적으로 부서간 '알력 싸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정대리인 소관인 디지털 관련 부서가 준법감시부 등 타 부서를 설득하지 못하면서 지정 이후 막상 계약체결을 앞두고 불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업권 관계자는 "디지털부서가 큰 힘을 갖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핀테크와 매칭까지는 했어도 그 이후 절차는 타 부서에 막히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이런 애로사항을 반영해 이번 3차 지정부터는 '업무위탁할 금융회사에서 내부통제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사람(준법감시인 등)이 업무위탁 계약 체결의 적정성을 검토한 공문 등'의 첨부 서류를 내도록 했다.

◇ '채찍과 당근' 카드 검토하는 금융당국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금융당국은 지정대리인 제도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지정대리인 제도의 경우 핀테크와 은행이 협업할 수밖에 없는 시장흐름 상 앞으로도 유용한 제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이전에는 금융기관과 비금융사 간의 업무 위·수탁 계약을 맺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길은 열린 셈"이라며 "지정대리인으로 가게 되면 금융회사의 데이터 등 자원을 쓸 수 있어 유리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적으로 검토되는 것은 금융사 면책 카드다.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혁신서비스나 지정대리인과 관련해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금융회사 직원을 면책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다.

금융당국은 하반기 내로는 이러한 규정 개정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채찍' 카드도 고려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다음달 중으로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금융회사를 위주로 경영진 면담에 들어갈 예정이다. 계약이 미체결된 이유나 애로사항 등을 청취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일부에선 금융사의 의지가 없거나 의사결정이 달라지는 등 사실상 중단할 수밖에 없을 때는 금융위가 '지정 취소'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혁신심사위원회에 부의하는 방식을 통해 지정 취소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특별히 금융사나 핀테크사에서 지정취소를 원한 곳은 없어 지정 취소에 대해서는 보지 않고 있다"며 "제도 시행 초기다 보니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으로 보고 하반기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는 건들을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ywkim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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