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글로벌 은행들이 올해 들어 발표한 인력 감축 규모가 4만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적으로 제로 혹은 마이너스 금리 환경이 확산되는 가운데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하면서 은행들이 공격적인 감원에 나서고 있다.

◇은행들, 고난의 계절…5만명 넘을 수도

이들 은행이 공식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해 발표된 총 감원 규모가 4만명을 넘었고 지난 4월 이후 2분기에 발표된 감원 규모만 3만명에 이른다.

대형 은행 중에서도 특히 유럽계의 감원 규모가 대다수를 차지해 고된 환경을 반영했다.

도이체방크가 지난 7월 초 사실상 투자은행(IB) 부문을 포기하며 오는 2022년까지 전체 인력의 약 20%에 해당하는 1만8천명을 줄이기로 해 전체 감원의 약 절반에 이르렀다.

바클레이즈는 이미 이달 초 3천명을 정리해고했다고 밝혔으며 며칠 후 HSBC도 약 5천명의 감원 계획을 내놓았다. 소시에테제네랄(SG)과 스탠다드차타드은행도 앞서 각각 1천600명과 1천200명을 정리하겠다고 했다.

UBS 또한 이번 주 수백명의 인력 감축을 현재 검토 중이라고 밝혔고 코메르츠방크도 전체 1천개 지점 가운데 최대 200개 지점을 폐쇄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의 대형 은행뿐만이 아니다. 스페인 최대 은행인 산탄데르도 올해 스페인에서만 3천200명을 비롯해 총 5천400명의 감원 계획을 발표했고 카이사뱅크도 감원 예정 규모가 2천명이다.

유럽계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감원 강도는 덜하지만, 미국계 은행도 수익성이 악화하는 트레이딩 부문을 중심으로 인력을 정리하고 있다.

씨티그룹은 지난달 말 트레이딩 부문에서 400명을 정리해고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씨티의 트레이딩 부문 전체 인원 중 10% 수준이다.

JP모건도 올해 3월 자산관리 부문에서 수백명을 감원하겠다고 했고 골드만삭스도 지난 3월 트레이딩 및 세일즈 부문에서 약 5%의 인원을 내보내기로 했다.

이들 글로벌 은행 외에 각국 주요 은행의 감원 규모까지 고려하면 올해 은행들의 감원 계획은 4만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아직 공식화하진 않았으나 이탈리아 최대 은행인 우니크레디트도 최대 1만명의 감원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수치까지 포함하면 올해 글로벌 은행의 감원 규모는 5만명을 웃돌게 된다.

지금까지 은행들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인력 감축 규모는 전체 인력의 약 6%에 해당한다.

◇마이너스 금리와 인공지능의 협공

글로벌 은행들이 인력을 조정하는 배경은 다양하겠지만 기저에 있는 여러 원인 중 하나는 마이너스 금리 여건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마이너스 금리가 붙은 채권의 규모가 17조달러에 이른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곳 중 하나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채권시장이다.

유로존 벤치마크인 독일 국채 10년물의 수익률은 연일 최저치를 경신하며 마이너스 0.68% 수준까지 내려왔고 독일 정부는 지난 21일 사상 최초로 30년물 국채를 제로 쿠폰으로 발행했다. 독일은 전 구간의 국채금리가 마이너스고 또 다른 유로존 핵심국인 프랑스 또한 15년물까지 국채금리가 마이너스 영역에 있다.

채권금리가 만성적으로 마이너스 상황에 놓이면서 유럽계 은행들은 이제 예금에 수수료를 부과하고 대출에 돈을 얹어주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덴마크 대형 은행인 유스케은행은 잔고 750만 크로네를 초과하는 계좌에 대해 연 0.6%의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했고 UBS도 오는 11월부터 잔고 200만 스위스프랑 초과 개인 계좌에 연 0.75%의 수수료를 매기기로 했다.

이런 추세가 확산되면 그만큼 은행에 맡기는 예금 규모도 줄게 되고 은행의 유동성과 수익성도 나빠질 수밖에 없는 흐름이다.

베렌버그의 앤드루 로우 은행 담당 연구원은 "분명히 투자은행 수익은 나빠지고 있다"며 "제로 또는 마이너스 금리 환경에서 투자은행은 돈을 벌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0.2%포인트 낮추면 도이체방크의 올해 수익이 42% 급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2014년부터 ECB가 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내리면서 유로존 은행들의 주가 역시 평균 약 40% 하락했다고 CNN은 전했다.

인공지능과 컴퓨팅 기술이 핵심으로 자리 잡은 트레이딩 환경의 변화도 은행에 감원 압박을 넣고 있다.

현재 주식과 채권, 선물, 원자재, 파생상품 시장은 자동 매매와 패시브 전략, 압도적인 운용자산(AUM)을 확보한 공룡들이 좌우하는 상황이다.

이들은 대규모 자금력을 동원해 지수를 추종하며 기계적으로 매매에 나선다. 이런 매매는 큰 수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때때로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과 달리 안정되고 예측 가능한 결과물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점이 있다.

블랙록 등 대형 자산운용사뿐 아니라 투자은행들도 펀드 매니저 대신 컴퓨터 엔지니어의 채용 규모를 늘리며 앞으로 트레이딩 시장에서 인간의 비중은 갈수록 기계에 더 밀릴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골드만은 올해 초 트레이딩 부문의 감원을 발표했음에도 지난 몇 년 사이 최대 규모의 채용을 계획하고 있다고 마켓인사이더가 22일 전했다.

다만 채용 대상은 IB나 트레이딩 인력이 아니라 기술 엔지니어로 규모는 100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마켓인사이더는 "골드만은 월가에서 트레이딩 부문이 가장 큰 투자은행 중 한 곳"이라며 "그런 골드만이 트레이딩 플로어에 설 엔지니어를 대규모로 뽑는다는 것은 산업계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신호"라고 풀이했다.

금융정보 분석업체 콜리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투자은행 상위 10여곳의 채권·외환·상품(FICC) 부문 수익이 2006년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jh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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