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 후 기존 질서가 변하고 있다. 자유무역은 강대국의 우선주의로 엉켜버렸다. 정치가 경제와 금융에 직접적인 위험요인이 되는 양상이다. 당장 이 여파의 피해자는 중앙은행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트럼프 시대가 끝난 후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세계 중앙은행에 대한 시장의 평가와 신뢰는 어떻게 변할까. 그동안 나름의 부침을 견뎌왔지만, 중앙은행이 요즘같이 금리 조작 버튼이나 누르는 취급을 당하는 때가 있었던가.



지난주 미국 대통령이 적국의 지도자와 자국 중앙은행 총재를 비교하는 전례 없는 공격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 계정에 "유일한 질문은 제이 파월 또는 시(진핑) 주석 중에 누가 더 큰 적인가 하는 점"이라고 올렸다. 이는 세계 중앙은행장이 모인 잭슨홀 심포지엄에서, 파월 의장이 내달 기준금리 인하 여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년 재선을 앞두고 반드시 증시를 살리고 불황을 피하고 싶은 트럼프 대통령 속내를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무슨 생각일까. 호주 중앙은행 필립 로우 총재의 잭슨홀 발언을 통해 세계 중앙은행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로우 총재는 통화정책이 많은 짐을 지고 있다며 미국, 브렉시트, 홍콩, 이탈리아를 거론하면서 "정치 충격이 경제 쇼크로 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통화정책은 중기 경제성장을 이룰 수 없다"며 "자산 가격만 올릴 위험을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인프라 투자, 구조 개혁이 금리 인하보다 더 영향이 크지만, 정치인이 행동하는 것을 주저한다고 강조했다.



누가, 무엇이 문제인가. 소위 말해서 정부와 정치가 할 일 안 하고 중앙은행만 경제라는 자식을 혼자 돌보면서 시달린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아이를 홀로 책임지는 데도 오히려 대접은 못 받는다. 트럼프의 트윗을 보면 최종 대부자로서 경제와 금융시장의 최후 안전판인 중앙은행의 위상은 최근 낮아진 기준금리만큼이나 초라해졌다. 중앙은행은 시장의 신뢰를 받아야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위기가 닥쳐올 경우가 걱정된다.



해외만 이럴까. 최악의 시나리오로 흘러가는 미·중 무역전쟁과 한일 대립 속에서 국내 채권, 외환시장의 변동성은 커지고 있다. 또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여야의 잦은 충돌은 경기 회복 불씨를 살리고픈 국민을 더 지치게 한다. 올해 10대 그룹 상장사의 보유 현금이 18조 원 늘어난 242조 원이 됐지만, 설비투자는 늘지 않고 있다. 기업은 악재에 대응할 수 있지만, 불확실성에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2020년도 국가 예산이 사상 첫 500조 원을 넘어서는 규모로 다음 달 초 국회에 제출된다고 하는데 쉽게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앞선다. 그 과정을 참으면서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 피로감이 몰려온다. 이렇다면 한국은행이 당분간 혼자 경기 방어에 나설 분위기다. 시장도 한은만 쳐다볼 공산이 크다. 전 세계 중앙은행의 독박육아 시대인 셈이다. 정치권과 정부, 중앙은행이 합심해 경기 하강을 막고 회복세로 돌리려는 노력에 신속히 나서길 바란다. (자산운용부장 이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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