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미란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29일 원심을 깨고 파기환송을 선고하면서 삼성이 또다시 위기 상황에 맞닥뜨렸다.

국정농단 사태로 지난 3년간 사실상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서 경영 차질이 지속했는데, 이날 대법원 선고는 향후 불확실성을 더욱 키우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이 이날 대법원 선고가 나오자마자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렸다"고 사과하면서도,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밝힌 것은 복잡한 심경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중 무역분쟁 격화와 반도체 경기 하강, 일본의 수출 규제 등 최악의 경영환경과 위기 속에서 또다시 리더십 공백 상황으로까지 가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호소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희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강조하면서 다시 일할 기회를 달라는 호소였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기소 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날 때도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았던 삼성이 이날 '완곡한' 입장을 밝힌 것은 그만큼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특히 최악의 경영환경 속에서 법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하고, 파기환송심에서 이 부회장이 실형을 받아 재수감될 가능성도 커진 만큼 답답함을 드러낸 것이란 해석도 있다.

재계는 삼성이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사가 이어지며 리더십과 내부 사기 등에서 만신창이가 됐다고 보고 있다.

삼성 내부에서 느끼는 위기감이 바깥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해 공식적으로 호소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삼성은 국정농단과 관련해 수차례의 압수수색과 관계자 소환, 이 부회장과 미래전략실 수장들의 구속,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수사,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 관련 압수수색 과정에서 파생된 노조 수사 등을 받아왔다.

특히 최근에는 반도체 가격 급락에 따른 실적 악화와 일본 수출 규제, 미중 무역 갈등 격화 등이 겹치면서 경영환경 측면에서도 '퍼펙트스톰'을 맞았다.

재계 관계자는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장악했던 노키아도 스마트폰이 등장하자 한순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며 "이런 전자 시장의 격랑을 헤치고 삼성전자는 세계 1위로 도약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가 위기를 선제적으로 포착해 기회로 전환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 점은 인정해줘야 한다"며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오너의 비전과 경영진의 실행력, 직원들의 '할 수 있다'는 도전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실적 악화와 수출 규제, 무역 갈등을 돌파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오너의 비전과 경영진의 실행력, 임직원들의 도전정신이 필요한데 현재는 모두 위축된 상태"라며 "위기 돌파를 위한 동력이 모이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삼성은 다만 대법원이 재산국외도피죄와 재단 관련 뇌물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데 희망을 걸고 있다.

뇌물공여액이 70억 원으로 인정됐는데도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 대해 감경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 회장은 뇌물을 건넸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수동적으로 응한 것에 불과하고,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라는 이유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재판부는 당시 "신 회장은 지원금이 공익적 활동에 사용되리라 예상하며 지원했다"면서 이후 면세점 특허와 관련해 별다른 특혜를 받지도 못했다고 봤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인 이인재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변호사는 "대법원이 대통령의 요구에 따른 금품 지원에 대하여 뇌물 공여죄를 인정한 것은 다소 아쉽다"면서도 "형이 가장 무거운 재산국외도피죄와 뇌물 액수가 가장 큰 재단 관련 뇌물죄에 대하여 무죄를 확정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대법원은 또 삼성이 어떠한 특혜를 취득하지도 않았음을 인정했다"고 강조했다.

mr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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