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물가가 떨어진다는 것은 경제활력이 약해진다는 의미다. 언젠가 그럴 줄 알았지만 결국 확인해주는 지표가 나왔다.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해보다 마이너스(-)0.038%를 보였다. 1965년 통계 작성 후 처음이다. 농산물, 유가 등이 내린 여파에다 소비 부진도 겹친 결과다. 통계청은 올해 말에는 원래 수준으로 복귀한다고 보지만 이마저도 0%대 후반이다.



같은 날 나온 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잠정치는 앞선 속보치보다 0.1%포인트 낮아진 1.0%를 기록했다. 여기서도 물가 지표인 'GDP 디플레이터'는 -0.7%였다. 2006년 1분기 같은 수치를 보인 후 최저치다. 이 지표는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에 이어 3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저물가는 저금리로 이어진다. 저물어가는 한국 경제에 극단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할 수 있다.



세계 대공황 연구를 많이 한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2008년 위기 당시 미 경제를 살리려고 5%대의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떨어뜨리고 자산을 매입하는 등의 강력한 정책을 펼쳤다. '헬리콥터'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 시카고대학 교수가 극단적 완화책을 '헬리콥터 머니'라고 표현한 것에서 유래한다. 비처럼 돈을 뿌린다는 의미다.



버냉키 전 의장이 큰 위기에 적합한 타개책으로 '끝장' 정책을 실행했지만 헬리콥터 머니는 어디까지나 극단적인 상황에서 쓸 카드라고 했다. 버냉키는 금리가 제로 수준이어서 통화정책 홀로 경기를 회복시키고, 낮은 물가를 되살리려는 것이 부족할 때 재정정책이 강력한 대안이라고 제시했다. 다만 최근 선진국 국회는 정부 부채가 이미 많다는 걱정으로 재정 정책 사용을 꺼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당장 우리는 헬리콥터를 띄울 정도는 아니다. 3년 만에 부활한 거시정책협의회에 참석한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는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며 내년 이후 물가가 1%대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차관도 성장 활력이 견조하다고 보기 어려우나 2%대 성장 흐름을 유지하고, 일본 같은 주식, 부동산 가격의 버블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길게 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지금 흐름을 디플레이션 초입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외여건 악화가 없더라고 저출산과 고령화에 의한 생산성 둔화로 성장률이 추세 하락하면서 스스로 무너질 여지가 있어서다. 고령화 연구자들은 경제성장률이 2016~2025년 1.9%, 2026~2035년 0.4%가 될 것으로 추산한다. 돌파구가 될 수 있는 남북 경협은 장기 불확실성 속에 갇혔다. 이러다가 가만있으면 자멸할 수 있다.



미래 경기 활력을 잃지 않으려면 통화정책 열쇠를 쥔 중앙은행과 재정정책을 펴는 정부만 머리를 맞대는 것으론 부족하다. 투자하기보다 과잉저축 중인 기업도 여기에 동참해야 한다. 또 내년부터 줄줄이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에 대한 최선의 대응책을 같이 찾아야 한다. 시간은 흘러가고 시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안 그러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한다. (자산운용부장 이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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