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거의 인생의 절반을 거래소에서 보냈네요.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일했기에 아쉬움은 없습니다"

1989년에 한국거래소에 입사한 후 30년. 임기를 마친 정창희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시장본부장은 연합인포맥스와의 퇴임 인터뷰에서 담담히 말했다.

그에게 회사생활은 이벤트의 연속이었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거래소지만 신의 직장도 직장이라 평탄한 것은 아니었다.

외환위기가 터졌던 1997년에는 채권 실무팀장을 맡아 국채전문유통시장과 레포(Repo) 시장 개설, 일반 채권매매 시스템 자동화에 나섰다. 2004년에는 청산결제실장으로 예탁결제원과 오랫동안 갈등을 빚었던 청산결제기능에 집중했고, 2007년에는 IT 통합지원단장을 맡았다.

인사·총무 담당 상무를 맡았던 2014년에는 공공기관 해제를 위해 노조와 복리후생비 줄이기 협상에 힘을 쏟기도 했다.

입사 후 지금까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일'은 IT 통합지원단 때 자본시장 핵심 인프라인 'EXTURE'를 구축하던 일이라고 했다.

2005년에 증권거래소, 선물거래소, 코스닥증권시장이 합쳐지면서 통합 거래소의 IT시스템이 필요했다. 거래소 시스템 뿐 아니라 60여개 증권사, 선물사 시스템, 관련 금융기관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3년간 휴가도 없이 매일 밤 11시 넘어 퇴근하던 때였다.

그는 "잘못되면 자본시장 전체가 전면 중단될 수도 있기에 당시 일했던 사람들 모두 절실했고, 실패하면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일했다"며 "가슴 벅차고 뿌듯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시스템 가동 1주일이 지나고 안도감에 눈물을 쏟았다고 그는 회상했다.

파생상품시장본부를 맡은 지난 3년은 어땠을까. 정 본부장은 "세상을 보는 지평을 넓힐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파생상품 거래가 이뤄지는 금융시장 뿐 아니라 탄소배출권, 전자기파와 광통신 같은 지식도 익혀야 했다.

"빛의 속도가 제일 빠르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파생상품 거래에서 누군가 거래소 백본망(Back bone)보다 빠른 마이크로 웨이브를 활용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과 부산 간에 정보가 이동하는 시간을 줄이려고 한거죠."

정보가 곧 돈이 되는 금융시장. 서울과 부산 간의 정보 이동 속도를 줄이기 위해 기술력을 동원하는 일도 생겼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를 찾아 이를 확인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는 경제·경영만 알아서는 안 되는 시장이 됐다고 그는 강조했다. 증권, 금리, 통화, 원자재에서 파생되는 각종 상품을 이해하기 위해 물리학, 수학, 금융공학 관련 지식을 부지런히 배워야 했다고 그는 말했다.

퇴임 이후의 계획을 묻자 그는 "그동안은 목표 중심으로 일해왔습니다. 제2의 인생은 규제 없이 좀 자유로운 일을 해보고 싶네요."

다음은 정창희 본부장과의 일문일답.



-지난 3년간 파생상품시장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한 일은

▲파생상품시장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걸 바꾸려 했다. 투자자를 다변화하고, 부정적인 투기거래자 대신 방향성 투자자로 호칭을 제안했다. 본부에서 2017년에 '손에 잡히는 파생상품시장, 올해 경제적 의사결정과 파생상품시장 책자도 두 권 발간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11년부터 시장건전화 조치를 하면서 개인투자자 문턱을 높였다. 시장은 유동성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가격이 합리적으로 형성되려면 누구나 언제든 거래가 가능해야 한다. 2011년 개인투자자 보호 조치 이후 개인 유동성이 무너졌고, 이후 기관 프랍이 철수하면서 외국인 중심의 유동성이 형성돼 왔다. 지금은 시장이 단련돼서 좀 풀어주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개인의 위험수요가 있음에도 아직 장내 문턱이 높다. 그러다 보니 보호가 안되는 해외로 가는 아웃바운드 투자자가 늘고, 최근에는 비트코인 같은 쪽으로 투기적 수요가 몰렸다. 제대로 수요를 흡수하려면 규제 완화와 시장 친화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했다. 다양한 파생신상품을 상장하고, 특히 정부 정책인 코스닥시장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해 KRX300선물, 코스닥150 옵션 등 코스닥 관련 상품을 상장했다. 시장 조성확대로 유동성 증가에 기여하고자 노력했다.



-이것만은 참 잘 개선됐다 하는 점은

▲파생상품발전방안을 통해 규제가 합리화된 점이 좋은 것 같다. 개인투자자의 중복적 규제 부담을 완화하고, 글로벌 제도 정합성을 위해 기본예탁금을 낮추고, 사전교육과 모의 교육을 실질적으로 투자자 수준에 맞추도록 한 점이 잘됐다고 본다. 시장 주도로 다양한 상품이 개발될 수 있도록 장내파생상품 상장 체계를 개선한 것과 담보자산 관리 제도 개선, 중앙청산소 청산 대상을 확대하는 등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체계도 마련했다. 거래정보저장소(TR)도 2020년 10월 가동을 목표로 준비중이다.



-해외파생상품시장과 비교할 때 앞으로 우리나라 파생상품시장에서 꼭 나아졌으면 하는 점은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은 시장 거래속도와 비용 효율에 민감하다. 주요 거래소 대비 열위인 시장접근환경 개선을 통해 거래 경로를 단축할 필요가 있다. 대량주문취소, 자기거래 방지, Drop copy, Give up 등 선진 주문, 청산 제도는 차세대 시스템 구축시 도입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국내외 기관 투자자를 확충해 유동성, 헤지기능을 높이고, 국제 경쟁력이 강화되길 바라고 있다.

또 장내 파생상품시장에서 중화권 투자자 비율이 현재 1% 미만인데 향후 규제 완화시 중화권 투자자의 국내시장 참여 증가가 예상된다. 2017년 개설한 싱가포르 지점을 중심으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할 예정이다.

앞으로 개인투자자 진입 규제 합리화를 계기로 투자자 보호가 미흡한 비트코인, 불법선물계좌, 해외로 이탈하는 해외선물 투자자가 보호가 용이한 장내 파생상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현재 우리나라 파생상품시장은 주가지수 상품, 특히 코스피200을 활용한 상품으로의 쏠림 현상이 있다. 투자자 수요 다변화에 맞춰 2020년 무위험 지표금리 선정 이후에는 이를 기반으로 한 단기금리선물 상장을 추진하고, 배출권시장에서 금투업자, 개인투자자 참여가 허용되는 2021년 이후에는 현물시장과 연계한 선물시장 개설도 검토할 계획이다.

-향후 파생상품시장 환경은 어찌 달라질 거라고 예상하나.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위험관리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본다. 아시아지역 파생상품거래소간 경쟁도 심해질 수 있다. 중국은 2015년 금융당국 주가지수선물 안정화조치 이후 거래가 정체됐으나 최근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했고, 일본은 거래소간 통합(JPX 출범), 파생상품 거래시간 연장 등을 통해 투자자 접근성을 강화했다.

한국도 투자자 진입 규제 합리화와 24시간 거래가 가능한 자체 야간시장 구축, 다양한 장내 파생상품 개발 유도 등에 나서고 있다.

IT금융환경도 블록체인이 금융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블록체인 기술이 청산, 결제 업무에도 적용가능한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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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1시 13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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