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경제가 어렵다. 이렇다 보니 예전처럼 정책을 수립ㆍ총괄하고 예산을 편성ㆍ집행하면서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끌었던 경제관료의 부족을 탓하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엘리트로서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똘똘 몽쳤던 과거 공무원의 모습은 사라지고, 안정적인 직장의 월급쟁이로서의 공무원만 남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났던 경제부처의 한 간부는 "예전과 같이 사명감을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더 이상 자부심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시쳇말로 '웃픈' 현실이라며 이야기를 하나 들려줬다.

요즘 공무원들이 어떤 경제정책을 만들 때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의 하나가 "이거 법이야, 그럼 안돼", "웬만하면 법 개정은 피해야지"라는 것이란다. 법안 개정을 수반한 대책은 국회 통과라는 험난한 장애물이 있기 때문에 언제 국회를 거쳐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들었다. 나아가 국회의원들에게 관련 법안을 설명하기 위해 짐을 싸 들고 국회를 돌아다녀도 허탕 치는 일도 일상다반사라고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과거 대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한국 경제를 책임진다'는 사명감을 요구할 수 있겠느냐고 호소했다.

주요 경제부처 '세종시대'가 열리면서 정책을 수립하고 입안할 때 행정부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고 그 권한이 상당 부분 입법부인 국회로 넘어간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국회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20대 국회의 법안처리 비율은 역대 국회와 비교해 현저히 낮다. 사실상 낙제점 수준이다. 실제 20대 국회에서 접수된 법안 2만1천965건 중에서 처리된 법안은 6천353건으로 29%에 그쳤다. 민생을 위해 내놓은 각종 정책이 정작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잠자고 있는 셈이다. 여야 정치권이 민생보다 패권 싸움에도 골몰하고 있는 탓이다.

오죽하면 정치권에 쓴소리하길 부담스러워하는 기업인들마저 불만을 쏟아냈을까.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25일 공식 자리에서 "기업활동을 돕는 법과 제도 변화는 여전히 더딘 상황이다. 정치적인 상황들로 우리 사회가 경제 현안과 입법 관련 논의를 이어가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지난 19일에도 "현 경제 상황을 보면 총력대응을 해도 헤쳐나갈 수 있을지 걱정인데, 정치권이 경제 이슈에 대해 제대로 논의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고 정치권을 저격했다.

현재 한국 경제는 '트리플 마이너스'라는 전대미문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국내외에서 마이너스 금리, 마이너스 경제성장률, 마이너스 물가 등 과거에 겪지 못했던 암울한 상황이 현실이 됐다.

작금의 상황에 대해 정치권은 여야를 떠나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행정부를 견제하는 본연의 임무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경제와 민생에 절실한 법안처리를 미루는 것은 두 발을 묶어놓고 '왜' 제대로 뛰지 않냐고 하는 것과 같다. 지금은 정부와 기업, 가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 다시 활기차기 뛸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줄지를 더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다. (정책금융부장 황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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