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긴 이름을 약칭해 '공정거래법'으로 불린다.

다른 법들을 줄여서 부를 때처럼 '독공법'이라고 부르거나, 앞부분을 따서 '독점규제법'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정거래법을 집행하는 기관을 '독점규제 위원회'가 아닌 '공정거래위원회'로 부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공정'이라는 관념에 대한 우리의 높은 기대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공정한 거래'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유시장 경제에서 모든 법률 관계는 당사자의 자유의사에 따라 이뤄진다.

당사자들 사이의 법률관계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완전히 각자의 자유에 맡겨지며, 법도 그러한 자유의 결과를 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존중한다.

그러나 거래의 자유만을 강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장은 힘이 약한 사람이나 기업에게 가혹한 희생을 강요하게 되고, 결국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 된다.

이 부분에서 공정거래를 위한 정부의 개입이 정당화된다.

공정위는 위와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있을까.

공정위는 홈페이지에서 "공정거래제도는 시장경제체제의 기본원리인 '기업 간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경제활동의 기본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공정거래제도는 크게 '자유로운 경쟁'과 '공정한 경쟁'을 두 가지 축으로 한다.

공정거래제도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은 품질 및 가격에 의한 경쟁 외의 다른 요소들이 거래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규제들은 대부분 공정거래법에 잘 구현돼 있다.

공정거래법에서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과 부당한 공동행위, 재판매가격 유지행위 등을 금지하는 것이 바로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들이다.

공정한 경쟁을 위한 규제는 크게 불공정거래행위 규제와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 중소기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로 나뉜다.

소비자는 사업자보다, 중소기업은 거래 상대방인 대기업보다 열위에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양 당사자 사이에는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고, 공정위가 이러한 거래에 개입해 양 당사자 사이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공정거래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불공정거래행위 규제는 어떨까.

불공정거래행위 중 경쟁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들은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이러한 규제의 필요성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

반면, 경쟁 그 자체가 아니라 경쟁수단의 내용이나 거래 내용의 불공정성을 국가기관이 규제할 필요가 있는 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공정' 또는 '불공정'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가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모든 관계에서는 미세한 불공정이 있을 수 있고, 어떠한 조건이 공정한지 혹은 불공정한지는 각자가 처한 상황마다 달리 판단될 수 있다.

양 당사자간에 협상을 통해 일부 불공정한 조건으로 계약이 체결된 경우, 공정위는 어떠한 판단을 하는 것이 공정할까.

만약, 시장에서 불공정거래가 너무 만연하게 이뤄진다면, 이러한 거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할 수도 있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가 설립된 1981년과 불공정거래행위가 많이 이루어졌던 2000년대 초반까지는 사회적으로 이를 시정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정위를 비롯한 여러 정부기관의 적극적인 법 집행, 개인의 권리의식 발달 등으로 일상적인 거래에서의 불공정거래행위 역시 감소했다.

그리고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과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 거래상 지위 차이가 명백하고, 특정 행위가 상대방에게 불공정한 경우 정부는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해 이를 규제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시대적 변화를 고려할 때 공정위가 불공정성이 명백하지 않은 양 당사자 사이의 사적 거래에 대해 공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 이러한 이유로 미국과 독일 등에서는 시장 지배적 지위를 가진 사업자들의 불공정거래 행위만을 규제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자유 시장 경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만큼, 국가기관이 사인 사이의 거래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법에서 정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자유로운 경쟁을 보호하기 위한 경우나, 거래 규모 차이가 현저한 시장 참여자 사이에 불공정성이 명백한 거래가 이뤄진 경우에 공정위가 개입하는 것은 필요하고, 또한 장려돼야 한다.

그러나 거래의 조건이나 내용의 불공정성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 국가기관이 양 당사자 사이의 거래에 개입하는 것엔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기관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것은 중요하지만, 기울어진 개인 정원까지 바로 세워야 하는 지에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태평양 김보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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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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