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내년도 업무계획 키워드 '초저금리'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김예원 기자 = 한국은행이 2년 만에 역대 최저 수준까지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정책당국 차원에서 '캐시 홀딩(cash holding)'에 대비하기 위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금융당국도 시중 유동성 흐름을 예의주시하며 당분간 이어질 초저금리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정책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17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전일 비공개로 진행된 확대 거시경제 금융회의에서는 세계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캐시 홀딩 현상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캐시 홀딩은 사전적으로 자산을 주식이나 채권 등이 아닌 현금으로 보유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최근에는 장기화한 저금리 기조 아래 금융회사나 투자자 등 경제주체가 현금을 쥐고 있는 현상을 뜻한다. 시중의 돈맥경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초저금리 현상이 지속하고 통화정책의 전달경로가 무너지면서 시중에 유동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이야기한 것"이라며 "자금의 선순환구조가 막히지 않는지 짚어봐달라는 메시지로 해석했다"고 했다.

정부는 최근 엄중한 경제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거시금융 점검회의를 확대했다. 이 같은 자리에서 언급된 캐시 홀딩 주의보는 금융정책과 감독 방향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더욱이 이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연 1.50%에서 연 1.25%로 역대 최저치로 다시 인하했다. 금리 동결을 지지하는 복수의 소수의견에도 금리 인하를 강행한 것은 저성장과 저물가가 장기화하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통화당국의 결정이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많다. 이미 일본과 유럽 등 저금리를 넘어 마이너스 금리 시대로 접어든 선진국들도 시중에 풀린 자금이 소비와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 탓에 경기둔화 현상이 지속하고 있어서다.

이미 국내에서도 돈맥경화 조짐은 시작됐다. 지난달 기준 국내 부동자금은 983조3천875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국내총생산(GDP)을 시중 통화량(M2)으로 나눈 화폐유통속도는 연초 이후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 중이다. 화폐를 혈액에 비유한다면, 유통속도 저하는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긴 것과 다름없다.

국내에 돈은 많이 풀려있지만, 주식시장으로 가진 않는다. 부동산가격에 편승하고 싶지만, 정부의 규제강화로 길이 막혔다. 결국 저금리를 이유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개인은 물론 금융회사도 돈을 들고만 있는 셈이다. 게다가 글로벌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투자심리는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세계 실물경제의 성장세가 둔화해 저성장·저물가·저금리의 전환기적 흐름이 시작됐다는 '뉴노멀' 시대에 금융회사의 위기의식도 커지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보편화한 초저금리 시대에 중점을 두고 내년도 업무계획을 준비할 방침이다.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공급 활성화와 자산관리 시장의 프레임을 변화할 수 있는 정책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최근 발생한 DLS 사태도 저금리 시대에 갈 곳 잃은 자금이 쏠려서 발생한 일"이라며 "뉴노멀 시대에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투자자 보호를 강화할 수 있는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금리 바닥을 섣불리 예견할 수 없는 흐름에서 캐시 홀딩 현상은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며 "시중 자금 동향은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내년도 업무계획 방향에는 이러한 추세 속에 금융회사와 시장을 감독하고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담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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