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월스트리트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 경선에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약진하고 있어서다. 뉴욕의 맨하튼에 있는 월스트리트는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심장이다. 워런의원은 이 심장에 대한 대수술을 예고하고 있다. 이 심장이 탐욕스러운 소수만을 위하는 게 아니라 미국인 모두를 위하도록 만들겠다는 게 워런의원의 공약이다.

미국의 불평등을 바로잡겠다고 목소리를 높인 워런 의원은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선두 자리를 꿰찼다. 그는 '이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다(This Fight Is Our Fight)'는 책을통해 "트리클다운 효과(Trickle-down effect:낙수효과)는 거짓말이다"고 강조했다. 신자유주의는 거대기업과 백만장자들만 살찌웠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세계적인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지도 최근 '가난한 미국(Poor America)'이라는 특집 기사를 싣는 등 워런 의원의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세상에서 제일 부유한 나라 가운데 하나에 어떻게 가난한 사람이 이렇게많냐고 반문한다. 특히 아동빈곤에 주목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코노미스트지가 인용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전체인구의 12%인 4천만명이 빈곤층으로 분류됐다. 이 가운데 1천850만명은 절대빈곤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아동의 17.5%에 해당하는 1천300만명의 어린이들이 가난을 경험하고 있다. 중위소득의 절반 이하인 상대적 빈곤층 비중은 OECD 국가 가운데 최악인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의 아동 가운데 20%는 정부의 보조금 지급에도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안전망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탓이다. 핀란드는 이 비중이 3.6%에 불과하다.







<이전소득 등을 감안한 미국의 빈곤율이 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은 주거복지가 터무니 없이 약한 탓에 가계의 빈곤율을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간 3만달러 이하 소득의 미국인 대다수가 절반 이상의 소득을 주거비용에 쓰는 것으로 집계됐다. 음식료비,교통비, 헬스케어에 지출할 여유가 없는 게 너무 당연하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소득 양극화의 '핵심 추동요인((driving force)'으로 치솟는 주거비용을 꼽았다. 주거비용이 치솟으면 빈곤층의 집중화를 초래하고 사회적 신분상승을 위한 사다리도 그만큼 약해진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최근 특집기사를 통해 밀턴 프리드먼으로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본주의 견인차인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지난 40여년간 맹위를 떨쳐왔던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의 주류 경제학계와 지성인들만 미국이나 영국의 지성들과 생각이 다른 듯 하다. 한국의 주류 경제학계는 여전히 시장이 최고의 가치이고 정부의 재정정책을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대로 가면 한국의 주류 경제학계와 지성인들이 밀턴 프리드만의 유일한후예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참고로 미국의 빈곤율을 설명하는 위의 OECD자료에 숨은 그림이 하나 있다. 세금과 이전소득을 감안하기 이전 빈곤율과 이후 빈곤율의 차이가 가장 작은 나라가 한국이라는 점이다. 빈곤율 수준도 '가난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우리가 미국을 안타까워할 처지가 아닌 셈이다. 왜 주류 경제학계와 지성인에 대한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인지 웅변하는 그림이다. (취재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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