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흔히 금융위기는 자산 거품이 꺼지면서 발생하는 예기치 않은 가격 폭락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나 시장을 깊게 보면 참가자 간 작은 불신과 기존 게임 규칙에 대한 신뢰 상실이야말로 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금융은 서로 믿는 것부터가 시작이어서다. 그래야 빌려주고, 투자한다.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 계약에 금이 가고, 불안이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최근 금융시장을 보면 믿음에 금가는 일이 이어진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라임자산운용의 상환·환매 연기 대상 펀드의 규모는 1조5천억여원에 이르고 있다. 라임을 믿고 돈을 맡긴 투자자는 개인 3천606명을 포함한 4천96곳이다. 금감원은 라임자산운용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펀드가 또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금 금감원은 사모펀드의 유동성 현황을 점검 중이다.

장밋빛 미래를 상징하는 유니콘 기업에 대한 신뢰도 무너지고 있다. 한때 470억 달러로 평가받던 사무실 공유 플랫폼인 위워크의 가치가 80억 달러까지 추락했다는 분석이 등장했다. 대주주인 소프트뱅크가 울며 겨자 먹기로 5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한다는 보도로 급한 불은 진화되고 있지만, 투자자들이 받은 내상은 쉽게 낫지 않을 것이다.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킬지 지켜봐야 한다.

다행인 것은 요즘 금융시장이 이런저런 사고에도 평온하다는 점이다. 1998년의 외환위기나 2008년의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학습 효과로 기업과 금융회사가 리스크 관리를 잘해온 데다 경제 규모도 커지면서 맷집도 좋아진 덕분이다. 예전 극복 경험도 중요한 자산이다. 하지만 앞으로 위기가 온다면 이전의 양상이 아닐 것인 데다 예측은 언제나 불완전하다는 점에서 자신할 수만은 없다.

특히 과거 위기에서 회복을 가능하게 했던 여건이 이번에 조성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가계 부채는 더 쌓였고, 잠재성장률은 낮아졌고, 인구는 줄고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으며 저금리 함정은 더 깊어졌다. 이런 때일수록 위기가 오면 다시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하다. 시장이 최종적으로 신뢰해서 기댈 곳은 정부와 중앙은행이다. 미·중 무역 분쟁, 브렉시트, 대북관계 등의 불확실성이 산재한 상황에서 정부와 중앙은행은 지금 시장에 믿음을 주고 있는지 점검해 볼 때다. (자산운용부장 이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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