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 23일 오전 11시.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실검(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은 온통 광고 문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콜라겐을 함유했다는 화장품이 1위를 차지한 가운데, 탄산팩 제품이 정상 자리를 노렸지만 1등의 기세를 꺾진 못했다. 콜라겐 화장품이 실검 1위에 오른 건 이 제품을 파는 업체가 초성 퀴즈 이벤트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XX콜라겐은 ○○○○○○ 먹는 콜라겐"이라는 문제를 낸 뒤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는 식이다.

오후 12시. 이번엔 연예인 이름이 들어간 프로틴 제품이 1위로 급상승했다. 이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가 3천만 원의 상금을 걸고 초성 퀴즈 이벤트를 하면서부터다. 오후가 되자 또 다른 퀴즈 이벤트를 벌인 화장품이 프로틴 제품을 밀어냈다.

네이버 실검이 기업의 광고 수단으로 변질하고 있다. 다양한 혜택을 내걸고 홍보 이벤트를 벌이는 기업과 그 기업의 제품은 어김없이 네이버 실검 상위권에 포진하고 있다. 그간 실검 상위권에 있었던 뉴스 또는 생활 관련 내용은 온데간데없다. 실검 순위가 일부 회사의 지나친 상술에 요동치게 된 셈이다. 네이버 실검이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실이 지난달 1일부터 19일까지 매일 오후 3시 네이버 실검을 분석한 결과, 1위를 차지한 19개 단어 중 15개(78.9%)가 상품 홍보를 위한 기업의 초성 퀴즈 이벤트였다. 분석 대상이 된 전체 380개 키워드 중 96개(25.3%)가 기업 광고였다.

상품 홍보에 혈안인 일부 회사의 의도적 조작은 없었을까. 전문가들은 매크로나 어뷰징 등 기계적 조작 없이도 짧은 시간 동안 다수를 동원하는 방식이라면 단시간 내 실검 장악이 가능하다고 본다. 실검 순위가 절대적 검색량이 아닌 상대적 검색량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꾸준히 10만회 검색되던 키워드가 20만회로 늘어난 경우보다 순식간에 10만회 검색이 이뤄진 키워드가 실검 상위에 오를 확률이 높다. 실검은 이렇게나 불시의 '화력'에 취약하다.

네이버가 손을 놓고 있는 이유는 뭘까. 다수 이용자의 검색 빈도를 집계해 여론 추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게 서비스의 취지라는 설명이다. 여론 동향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려면 검색 순위 자체를 임의로 건드려선 안 된다. 네이버는 개인정보 노출이나 명예훼손, 음란성·불법성 등 특정 기준에 해당할 경우에만 검색어를 제한적으로 삭제하고 있다. 현재도 "불법 매크로 사용 등의 검색어 조작 행위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하지만 일부 기업에서 돈벌이를 위한 도구로 실검 서비스를 남용하도록 사실상 네이버가 판을 깔아줬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광고로 도배된 실검은 네이버의 광고 수익에도 일부 도움이 된다. 제품명이 실검에 올랐을 때 클릭하면 화면 상단에 브랜드 검색 광고가 노출되고 이는 네이버의 광고 수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문제를 방치하는 사이,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포털 이용자들이다. 실검에 뜬 단어가 광고인지, 정치 공방전인지, 아니면 순수 검색어인지 판단하기 혼란스럽다.

제도 개선의 일차적 책임은 플랫폼을 운영하는 네이버에 있다. 네이버가 '광고 실검'의 부작용을 줄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과도한 홍보성 기업 광고를 실검에서 배제하는 것까지 전면적으로 고려할 필요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정 집단의 의도적·조직적 개입을 방지할 기술 개선책도 필요하다. 논란이 뜨거워지면서 마침 첫 공개 토론의 장이 열린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는 오는 25일 광화문 S타워에서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순위 올리기,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를 개최한다. 네이버는 "토론회에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반영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내 최대 온라인 공론장인 네이버가 가져야 할 책임은 절대 가볍지 않다.

(기업금융부 정윤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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