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최근 국제외환시장에는 두 가지 큰 흐름이 있다. 하나는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이 사실상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택함에 따라 일본 엔화가 강세를 보인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도 맞불을 놨다. 일본은행(BOJ)은 지난달 자산매입 규모를 10조엔 늘려 엔화 약세를 유도했다. 그 덕분에 최근 들어선 엔고 현상이 주춤해졌다. 달러-엔은 최근 1달러당 80엔을 넘겼다.

다른 하나의 흐름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 푼 자금이 이머징마켓(신흥시장)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이다. 한국과 홍콩, 중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나름대로 펀더멘털이 튼튼한 아시아 이머징마켓 통화가 초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이 선진국의 환율 싸움에 이머징마켓의 등이 휘말려 들어가는 셈이다.

요동치는 환율 때문에 아시아 각국의 외환 당국은 바빠졌다. 홍콩은 3년 만에 외환시장에 개입했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이머징마켓 각 나라도 환율방어 전략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일본은행의 선택은 = 변화무쌍한 국제외환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하려면 BOJ의 30일 통화정책 회의를 지켜봐야 한다.

BOJ는 30일 열릴 통화정책 회의에서 자산 매입 규모를 10조엔 가량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BOJ는 9월 통화정책 회의에서 자산 매입량을 70조엔에서 80조엔으로 10조엔 늘린 이후 10월 초에 열린 회의에서 아무런 정책변화를 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30일 열릴 회의에서 추가 대책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BOJ에 추가 자산 매입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일본 정부에선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현지 언론들은 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어 10조~20조엔 추가 자산 매입 가능성을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보도는 정책결정을 앞둔 BOJ에 상당한 압박요인으로 작용한다.

미국과 유럽 등 경쟁국들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BOJ의 자산 매입 확대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미국은 3차 양적완화(QE3)를 시행하면서 종료 시점을 못박지 않았고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무제한(open-ended) 매입하기로 했다. 미국과 유럽에 비하면 일본은행이 9월에 늘린 10조엔의 자산매입 확대는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BOJ의 추가대책에 목말라 있다.



◆'원고 엔저' 시대 대비해야 = BOJ가 자산 매입량을 늘리면 당분간 엔화 약세가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상대적으로 한국 등 이머징마켓 환율은 고공행진을 계속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머징마켓의 외환당국은 통화가치 급등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들은 선진국처럼 국채매입을 이용해 환율을 조정할 수도 없다. 밀려 들어오는 외화자금을 막기 위해 달러매수 개입을 하거나 투기적 자금에 세금을 부과하는 정도의 대책이 고작이다. 이러한 대책들은 과거에도 써봤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적극적으로 환율에 개입하려 한다. 환율전쟁을 대하는 일본의 입장이 절박하다는 신호는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일본 정치권을 중심으로 미국 국채를 매입해 엔화가치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웃나라인 한국의 환율 개입을 문제 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한국이 자유롭게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으며 이는 수출시장에서 한국과 경쟁하는 일본에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환시 개입하는 점을 들먹이며 일본의 환율 개입을 정당화하려는 전략이다.

우리나라 외환 당국에선 환율의 쏠림을 우려하는 발언이 최근 나왔다. 그러나 아직 적극적으로 환율에 개입하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다른 아시아 국가 통화의 절상률에 비춰볼 때 우리 원화만 크게 오르는 게 아니라는 게 우리 외환 당국의 입장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온갖 외풍에도 우리 경제가 순항할 수 있던 것은 환율 때문이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 이후 나타난 엔고의 영향으로 일본과 경쟁 관계에 있는 우리 기업들이 환율의 수혜를 많이 봤다. 그러나 앞으로 원고와 엔저가 동시에 오는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원화가치는 그동안 못 올랐던 것을 반영해 오를 태세고 엔화는 그동안 많이 올랐던 것을 반영해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국제경제부장)

jang7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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