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서울채권시장 수급이 단단히 꼬였다. 공급 물량은 넘쳐나는 데 수요는 미약한 탓에 채권 금리가 치솟고 있다. '수급은 모든 재료에 우선한다'는 오랜 증시 격언이 채권시장에도 어김없이 적용되는 모양새다.

채권 공급 물량이 어느 때보다 많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내년 국고채 발행 한도는 130조6천억원으로, 올해 추경을 포함한 102조9천억원보다 30% 가까이 늘어난다. 당장 올해 남은 발행량도 작년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남아 있는 발행 한도만 14조원에 이른다. 기획재정부가 연합인포맥스를 통해 올해 국고채 발행 한도를 다 채우지는 않을 것이라 밝힌 것도 이런 시장의 우려를 고려한 조치다. 여기에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에 따른 20조원 규모의 주택저당증권(MBS) 발행을 앞두고 있다. 오는 12월부터 본격적으로 발행되면서 시장에 풀리게 된다.

수요가 많다면 공급 물량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최근 수급이 꼬인 건 공급보다 수요 문제에 있다는 게 시장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공급 확대는 묵은 재료나 다름없어 수요만 뒷받침된다면 시장 조정이 커질 이유도 없다. 무엇보다 연말이라는 계절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특히 올해는 지난 8월까지 금리 하락폭이 컸기 때문에 상당수 채권 딜링룸은 이익을 많이 낸 상태다. 이익 굳히기 차원의 방어적인 전략이 선호되는 이유다. 자칫 연말에 과도한 베팅을 했다간 지금까지 올린 수익에 타격을 줄 수 있으니 잔뜩 몸을 움츠리는 것이다.

헤지에 주력하면서 사실상 북 클로징(book closing)에 들어간 기관도 일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보통 11월 이후 시작되지만, 강세장이 빨리 찾아오면 클로징 시기도 당겨지는 게 일반적이다. 고객 자산인 상품 위주의 운용북은 채권 포지션을 완전히 비우기 어렵다. 이 경우 델타(Delta)를 중립으로 맞춰 손익을 고정하려는 시도가 나온다. 자기자본으로 운용되는 프랍북은 상대적으로 포지션을 비워내기가 쉽다. 성과 체계가 분명한 외국계 은행과 국내 증권사들이 주로 이에 해당한다.

은행과 보험사 등 대형 기관은 북 클로징 개념이 분명하지 않다. 대부분 고객 자산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채권 포지션을 비워내기가 어렵다. 성과 보상에 민감한 구조가 아니어서 헤지도 단기 투자기관에 비해서 적극적인 편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매수 여력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들 또한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는 없는 분위기라고 한다.

국내 기관의 수급 문제는 이미 공개적인 자리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연합인포맥스와 기획재정부가 지난 8일 공동 주최한 '제6회 KTB(Korea Treasury Bonds) 국제콘퍼런스'에서다. 패널로 참석한 임한규 신한은행 증권운용본부장은 경기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에서 낮은 금리 수준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시장 수급 상황을 우려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보험사의 경우 보험료 수입 증가분이 크지 않아 신규로 채권을 살 수 있는 수요가 많지 않다고 했다. 또한 은행의 경우 그동안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100% 이상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채권을 대량으로 사야 했지만, 올해 연말 이후로는 기준 충족이 일단락된다는 점을 들었다. "은행 자산이 증가할수록 고유동성 채권을 일정 부분 채워야 했지만, 이런 수요는 올해로 거의 마무리된다. 기관 상황을 전반적으로 고려했을 때 수급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던 베테랑 딜러의 경고가 채권가격 급락장에서 새삼 주목받고 있다. (금융시장부장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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