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돈 벌어 이자도 못 갚는 이른바 '좀비기업'이 급증하고 있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경기 침체에 따른 기업의 수익성 악화가 근본 이유이지만,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없었다는 것도 한 몫 차지한다. 우리 경제 전반에 짙게 드리워진 저금리 장기화의 또 다른 그림자다.

한국은행이 지난 5일에 내놓은 '2018년 기업경영분석' 통계를 보면 조사대상 업체 69만2천726곳 중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 기업이 35.2%로 집계됐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이 3곳 중 1곳에 달한다는 의미다. 이자보상비율이 100%를 밑도는 기업 비중은 2016년 31.8%, 2017년 32.3%였다. 2년 연속으로 한계기업 비중이 늘어난 셈이다. 한은이 2011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로 가장 높은 수치다. 이자보상비율이 0%가 되지 않아 적자를 보는 곳도 2016년 27.0%에서 2017년 27.6%, 지난해 29.5%로 늘었다.









외부 회계감사를 받는 기업(외감기업)으로 대상을 한정해도 한계기업의 증가세가 뚜렷하다. 한은은 지난 9월 금융안정상황 보고서를 통해 외감기업 3천236곳이 한계기업으로 분류됐다고 밝혔다. 한은은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이자보상배율 1 미만)이 3년 연속 유지된 기업을 한계기업으로 본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계기업은 2017년 3천112개로 전체 외감기업 중 13.7%였으나 지난해에는 이 비중이 14.2%로 확대됐다.









이처럼 한계기업이 늘어나는 이유는 경기 침체 영향이 직접적이다.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이자비용을 내기도 빠듯해진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은의 기업경영분석 통계를 보면 지난해 전체 조사대상 기업의 매출액증가율은 4.0%로, 2017년 9.2%에서 5%포인트 넘게 하락했다. 수익성 지표인 매출액영업이익률은 6.1%에서 5.6%로 하락했다. 매출액세전순이익률도 6.1%에서 5.3%로 낮아졌다.

경기 침체와 맞물린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도 한계기업의 전염성을 높이는 이유다. 금리 하락은 기업들의 금융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반면에 한계기업이 구조조정 없이도 근근이 연명이 가능하도록 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지난 7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인하할 때 한 금통위원이 금리 인하에 찬성하면서도 "저금리의 장기화가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노력을 느슨하게 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저금리로 이자 부담을 줄인 기업들은 이 돈을 설비투자 등으로 재투자를 하기보다 불확실성에 대비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투자 없이 돈을 쌓아두거나 운영자금 등으로 써버리면 기업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해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려 하지만 자금이 생산적인 부문으로 가지 않으면 정책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KDB산업은행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업금융 총 잔액은 1천724조원으로 전년 대비 6.4% 증가했다. 2014년 이후 가장 큰 폭의 증가다. 연구소는 저금리 기조가 연장되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에는 우호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지만, 한계기업의 증가 가능성은 더 커졌다고 진단했다. 저금리 상황에서 채무기업의 구조조정 노력이 약해진 데다, 금융회사도 손쉽게 대출을 연장해주는 분위기라 한계기업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계기업의 증가는 금융의 자금분배 기능을 왜곡하는 동시에 경제의 생산성을 낮추는 요인도 된다. 이는 다시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경기 침체를 막는 게 정부와 통화당국 정책의 우선 순위이나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간 지금 금리 정책에만 의존하면 효과는 미약한데 저금리 장기화의 부작용은 심해질 게 뻔하다. 가계부채와 부동산시장 등의 문제도 초저금리 상황에서는 극복하기 쉽지 않은 과제다. 단기 처방에 매몰되기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업 구조조정과 구조개혁 작업을 강도 높게, 그리고 맷집 있게 밀고 가야 한다. (금융시장부장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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