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조직개편 앞두고 부서 통폐합도 거론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금융당국이 은행에서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의 판매를 제한하면서 가장 혼란에 빠진 곳은 시중은행 신탁사업부다. 개인 투자자를 유치해 판매하는 개념의 신탁이 '사모' 상품으로 해석되면서 주가연계신탁(ELT)과 같은 대표상품을 공급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에 돌입한 은행들은 신탁사업부의 성장률 목표치를 수정하는 것은 물론 주력상품 전략을 다시 세우느라 바빠졌다. 일부 시중은행 사이에선 신탁사업부 고사론이 제기되며 연말 조직개편을 계기로 다른 자산관리(WM) 부서와의 통폐합까지 거론되는 모습이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시중은행 실무진과 논의를 거쳐 파생결합펀드(DLF) 대책에 포함된 신탁상품 판매 제한에 대한 의견을 금융위원회에 전달하기로 했다.

금융위가 이달 말까지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에 대한 의견수렴을 거치기로 한 만큼 은행이 처한 어려움을 피력할 예정이다.

은행권에서는 판매가 가능한 상품군을 두고 여전히 해석이 분분하다.

가장 논란이 되는 상품은 ELT다.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 파생상품의 하나인 주가연계증권(ELS)을 신탁형식으로 포장한 해당 상품은 공모형이든 사모형이든 판매가 금지될 것으로 보는 게 은행권 중론이다. DLS에 신탁을 씌운 파생결합증권신탁(DLT)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 상품군의 판매잔액은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40조원을 넘었다. 대다수 은행의 신탁사업부 성과에서 절반 이상을, 많게는 70%까지 차지하는 상품군이다.

이번 해외금리연계 DLS와 같은 사례도 있으나 대부분의 ELS는 인덱스를 주요 기초자산으로 한다. 통상 6개월마다 돌아오는 평가시점에 특정 베리어 이하로 가격이 움직이지 않으면 조기 상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중은행 신탁사업부장은 "당국이 발표한 대책에 대한 해석이 부서는 물론 은행마다 다르고 매일 달라지고 있어 너무 혼란스럽다"며 "ELT의 경우 판매금지로 보는 게 중론인데 40조 시장을 한순간에 없앤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LT 판매가 제한되면 은행 신탁사업부가 다룰 수 있는 상품은 공모형 주가연계펀드(ELF)나 공모형 상장지수펀드(ETF) 정도다.

하지만 이들 상품으로는 신탁을 운용하는 묘를 살릴 수 없다는 게 은행권 시각이다. 이에 은행에 신탁사업부를 별도로 두는 의미가 없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연말 조직개편을 앞두고 신탁사업부가 축소되는 것은 물론 다른 WM 부서와의 통폐합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이미 일부 시중은행은 WM 관련 조직개편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은행이 다룰 수 있는 상품군이 줄고, 소비자 보호에 대한 분위기가 강화하면서 WM 부문 내 별도의 상품공급 부서를 통합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금융당국에 의견 전달을 위해 은행들이 중지를 모으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미 발표된 대책이 되돌려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전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이번 DLF 대책이 사모펀드 시장을 위축하고, 은행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란 지적이 이어졌다.

하지만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번 대책은 금융회사보다 소비자 보호에 초점을 뒀음을 강조하며 시장의 의견을 수렴하되 큰 틀의 정책적인 방향은 유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또 청와대와도 이번 정책을 사전에 조율했음을 내비쳤다.

금융권에선 이번 대책이 금융상품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가 부족한 데서 오는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른 시중은행 부행장은 "자산군을 구분하는 공모와 사모, 상품의 체인이 되는 펀드와 신탁을 구분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있었던 것 같다"면서 "목적과 방식에 따라 상품군을 칼로 물 베듯이 자를 수 없는데, 일단 규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보니 은행은 물론 은행의 소비자에 대한 배려도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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