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국내 한 중견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A씨. 그는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올해까진 근근이 버텨왔는데 내년을 생각하면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서다. 불안해진 심리 상태에 악몽까지 겹쳐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고 한다. 난데없이 돈을 빼앗기거나 빚쟁이에게 쫓기는 게 그의 꿈에 등장하는 주된 레퍼토리란다.

뾰족한 대책조차 떠오르지 않는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현금확보다. 해외법인은 다 정리하고 적자는 아예 올해 결산에서 다 털어버리고 몸집을 가볍게 해 내년을 준비할 참이라고 한다. 현금 없는 회사는 내년에 망한다는 위기감이 업계에 퍼져 있다고 한다.

"현금이 곧 왕이다." 기업인들이 느끼는 절박한 심정을 대변하는 화두다. 내년엔 현금 부족으로 쓰러지는 기업들이 여럿 나올 것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일본형 장기불황, 디플레이션 시대, 온갖 걱정의 푸념들이 그의 입에서 연신 흘러나왔다.

올해 실적이 좋았던 여의도의 증권사들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올해는 걱정했던 것보다 선방했다고 안도하면서도 내년 사업 계획을 물으면 긴 한숨만 내쉬는 곳이 많다.

우리나라 경제 상황에 대해서도 낙관하기 어렵다는 곳이 대다수다. 올해 최악이었는데 내년에 차악 정도만 되면 그나마 선방했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내년 목표치는 가급적 낮게 잡고 보수적 경영전략을 짜는 곳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말은 직장인들에겐 희망퇴직, 경영진에겐 구조조정의 시즌이다. 고통스러운 계절이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빙하기에 들어선 우리 경제 상황에선 유독 더 매서운 한파처럼 느껴진다.

대외적 상황은 불확실성 투성이고, 대내적 여건 역시 험난하다. 기업들의 활력이 떨어지고 자본시장도 주춤하면서 우리는 내년에도 버텨야 한다는 화두를 짊어지고 가야 할 것 같다. 비상경영 체제가 일반화되고 상시적 구조조정이라는 키워드가 많이 등장하게 될 전망이다.

여기에다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종료와 관련한 불확실성과 세컨더리 보이콧(제삼자 제재)에 대한 우려, 남북 관계의 악화와 냉랭한 한일 관계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경계심도 커지고 있다.

홍콩의 폭력 시위와 지지부진한 글로벌 무역 협상 등 글로벌 경제환경 역시 녹록지 않다. 나라 안팎으로 낙관적인 전망을 찾아보기 힘든 우울한 겨울이 오고 있다. (자본시장부장 이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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