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군자무본(君子務本),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 논어 학이편(學而篇)에서 공자(孔子)의 제자 유자(有子)가 한 말이다. 군자는 기본에 힘쓰고, 기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는 의미다. 유자가 말한 기본은 부모와 형제에 대한 효도와 공경을 뜻한다. 그렇게 쌓인 기본은 결국 군신(君臣)과 부부, 친구 등의 관계로까지 확대된다고 했다. 기본, 즉 인간의 본질적이고 마땅한 성품을 쌓을 때 사회적, 국가적 자산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인다.

유자의 말은 국내 유력 기업인들도 자주 인용한다. 국내 최대 통신사인 KT에 뼈아픈 현장인 아현국사를 찾은 황창규 회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황 회장은 방심과 자만이 아현화재의 상처를 낳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본립도생'의 마음으로 역량과 기술력을 결집해 인프라 혁신 연구·개발에 매진하겠다고도 했다. 황 회장 스스로도 기본에 충실하지 못해 참사를 빚었다는 사실 자체를 숨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5년 8개월간 KT를 이끌어 온 황창규 회장은 내년 3월이면 자리에서 물러난다. KT는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그의 뒤를 잇겠다며 자천타천 지원서를 낸 후보만도 37명에 달한다. 사외이사 4명과 사내이사 1명으로 구성된 지배구조위원회는 10명 내외로 후보를 추린다. 8명의 사외이사와 1명의 사내이사가 함께하는 회장후보심사위원회는 다시 3배수로 후보를 압축한다. 최종적으로 이사회가 차기 CEO를 뽑는다.

KT 회장은 엄청난 자리다. 자산 규모가 33조7천억원(2019년 9월 기준), 한 해 매출이 23조5천억원(2018년 기준)에 달하고, 연결대상 종속회사만도 64개인 기업을 경영한다. 유무선 전화와 초고속인터넷은 물론 IPTV 등의 미디어와 신용카드, 위성 사업, 해저케이블, 부동산개발 등의 사업도 총괄한다.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한 각종 융합 서비스까지 관할한다. 회장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본사 직원만도 2만4천명에 이른다. 직간접적으로 목숨줄을 쥐고 있는 협력사 직원까지 합치면 6만명을 넘는다.

막강한 힘을 쥔 자리이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KT 회장 자리는 선거 승리의 '전리품'과도 같았다. 정권에게 4대 금융지주 회장과 더불어 KT 회장 자리는 낙하산을 심어야 할 필수 포스트였다. 그렇다 보니 부정은 부정을 낳았고, 회사는 망가져 갔다. 직원들도 모르는 자리들이 만들어졌고, 청와대와 여당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내려온 사람들이 알듯 모를듯한 직함을 달고 임원이 됐다. 정권 주변을 기웃거렸던 사람들의 생활비를 KT가 대준다는 비아냥도 일었다. 회장의 연봉은 수십억으로 늘었고, 그에 따른 퇴직금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도덕적 해이는 극에 달했다. 결국 회장을 마치면 검찰청으로 불려가는 일이 반복됐다. 도덕적 해이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전 세계 ICT 업계는 4차 산업혁명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잠재적 경쟁자이자 적과도 손을 잡고 피를 섞기도 한다. 내부 역량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기술 투자는 필수다. 좋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기존의 사업을 뛰어넘는 융합 시도 역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언제든 공룡이 도롱뇽으로 전락할 수 있을 정도로 경쟁 강도는 세다. 위기이자 기회의 시대다.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감동을 주는 시대이기도 하다. ICT 기업에서 CEO의 역할은 무한대로 확장하고 있다. '꼰대 마인드'로는 세상을 따라갈 수는 없다. KT의 차기 회장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명확하다. 그렇다면 누구를 뽑아야 할지도 명확해진다. 대한민국 ICT 미래의 초석을 다져왔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KT 이사회는 더는 '꼰대 짓' 하지 말고 미래만 봐야한다. 10년 후에도 KT가 대한민국 대표 ICT 기업으로 살아남을수 있도록.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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