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미란 기자 = "은퇴조차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젊음을 포함해 모든 것을 LG전자와 함께했기에 후회나 부끄러움은 없다".

'세탁기 장인'으로 불리며 LG전자의 가전신화를 쓴 조성진 부회장이 LG전자를 떠난다.

1976년 9월 금성사 전기설계실에 입사한 지 43년 2개월 만이다.

올해 상반기 생활가전에서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세계 최대 가전 업체인 미국 월풀을 앞서며 신화의 대미를 장식한 그는 28일 "우리나라가 기술속국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연구개발에 몰두했던 때가 이젠 마음속 추억으로 아련히 남는다"라는 소회를 밝혔다.

여의도 트윈타워 집무실에서 후임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된 권봉석 홈엔터테인먼트(HE)·모바일커뮤니케이션(MC) 사업본부장(사장)을 만나 축하의 인사를 전한 그는 "안정된 수익구조와 사업 포트폴리오를 넘길 수 있게 돼 다행이지만 더 튼튼하고 안정된 회사, 미래가 좀 더 담보된 회사로 만들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한 회사에서 이렇게 오랜 기간을 다닌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

또 "LG전자가 영속되기 위해서는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1등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갖고 있어야 한다"며 "새 CEO인 권봉석 사장이 회사를 잘 이끌 수 있도록 기도하고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조 부회장의 물러남에는 LG전자의 도약을 위한 배려가 깔려 있다.

그는 현재가 LG전자가 4차 산업혁명의 큰 축인 디지털전환을 위해 더 크게 도약하기 위한 중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또 디지털전환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역량을 갖춘 젊은 사업가의 새로운 리더십이 LG전자의 도약을 이끌 것이라고 기대하고 용퇴를 결심했다.

조 부회장은 1956년 충남 대천에서 태어나 1976년 용산공고를 졸업한 후 같은 해 금성사에 입사했다.

그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세탁기 보급률은 0.1%도 안 된 시절이었지만 그는 세탁기가 반드시 대중화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2012년까지 36년간 세탁기에 매진하며 확신을 현실로 이끌었다.

2012년 말에는 사장으로 승진하며 세탁기를 포함한 냉장고, 에어컨 등 생활가전 전반을 맡았다.

그는 세탁기 사업을 통해 쌓은 1등 DNA를 다른 생활가전으로 확대하며 홈어플라이언스 앤드 에어솔루션(H&A)사업본부의 체질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투자, 고도화된 사업 포트폴리오, 안정적 수익구조 등을 기반으로 LG전자 생활가전의 위상을 높였다.

수익 기반의 성장을 가속하기 위해서는 프리미엄 가전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도 판단했다.

이같은 판단에 따라 한국 가전업체 중 처음으로 프리미엄 가전 LG 시그니처, 프리미엄 빌트인 시장을 겨냥한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등을 성공적으로 출시해 LG 브랜드의 위상을 높였다.

신개념 의류관리기 트롬 스타일러와 상단 드럼세탁기와 하단 미니워시를 결합한 트윈워시 등 세상에 없던 제품뿐 아니라 LG 퓨리케어 360°공기청정기, 코드제로 A9 등 고객의 삶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 줄 획기적인 가전제품도 꾸준히 선보였다.

LG전자의 활약으로 가전업계에서는 '신가전'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조 부회장은 "가전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세상에 없던 제품의 탄생으로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LG전자 H&A사업본부는 4년 연속 매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에서 '역대 최대'를 갈아치우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조 부회장은 또 생활가전에서 쌓아온 글로벌 성공체험을 바탕으로 LG전자 전사업에 혁신 DNA를 이식해왔다.

자동차 부품 사업의 성장동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자동차용 헤드램프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을 갖춘 오스트리아의 ZKW 인수했다.

그의 프리미엄 전략은 TV사업에서도 주효했다.

그는 2013년 LG전자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올레드 TV에 집중하며 TV사업의 수익구조를 한층 강화했다.

로봇과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빅데이터 등 미래 기술을 위한 선제적 투자와 역량강화에도 거침이 없었다.

그는 미래사업을 조기에 육성하기 위해 로봇사업센터와 같은 전담조직을 구성하고 해외에 인공지능연구소를 개소하는 등 미래사업을 위한 역량 강화에 힘썼다.

국내외에서 4차 산업혁명 분야의 인재들과 직접 만나며 인재 영입을 직접 챙겼다.

아울러 외부와의 전략적 협업을 통한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진하며 미래사업의 성장 모멘텀을 빠르게 마련했다.

지난해에는 산업용 로봇을 제조하는 로보스타의 경영권을 인수하기도 했다.

경영자가 아닌 선배로서 조언자 역할을 자처하고 주기적으로 많은 직원과 얘기를 나눌 기회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또 기존의 성공 방식, 관행적으로 해왔던 방식에서 벗어나 한발 빠르게 시장을 살피고 도전해 실패하더라도 그 가치를 자산으로 삼을 수 있는 조직문화 구축에 앞장섰다.

LG전자 관계자는 "조 부회장은 한국의 가전을 세계 최정상에 우뚝 올려놓은 가전신화의 주인공"이라며 "조 부회장의 업적이나 재직기간을 뛰어넘는 사례는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mr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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