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 20일 인천 계양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일가족이 숨진 채 발견돼 큰 충격을 줬다. 40대 후반의 여성과 20대의 두 남매, 그리고 딸의 친구 등 네 명이 생활고를 못 견디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들이 사망하기 전 작성한 각자의 유서엔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 악화를 호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앞서 2일엔 성북구의 한 빌라에서 70대 여성과 40대 딸 세 명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생계 곤란이 이유였다. 경기도 양주, 의정부, 서울 관악 등지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2014년 전국을 충격에 빠뜨린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서민들의 생활상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는 모양새다.

한편에선 고급 수입차가 연일 사상 최대치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대당 평균 3억원이 넘는 람보르기니의 판매는 8월부터 넉 달 간 세계 최대량을 기록할 정도라고 한다. 이 때문에 람보르기니 회장이 한국을 직접 찾을 정도로 애정을 보인다고 한다.

극심한 양극화의 현장이다. 한쪽에선 먹을 것이 없어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데 다른 쪽에선 수억원대의 차를 몰며 인생을 즐기고 있다. 영화 기생충에서 폭우에도 젖지 않고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인디언 텐트와 변기에서 오물이 역류하는 반지하 집의 대비를 연상시킨다.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 가족의 적나라한 삶에서 수입이 끊겨 배고픔에 삶을 포기하는 생계형 자살사건 당사자들의 삶이 엿보인다. 영화가 현실인지 현실이 영화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가난은 과연 개인의 책임인가, 사회의 책임인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은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기는 어려운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기생충에서 고정수입이 없던 송강호의 가족들이 원래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가난이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현실에서 생계 곤란 일가족 사망 사건을 막으려면 과연 우리에겐 무엇이 필요한가. 양극화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았지만, 정작 실천은 따르지 않는 말 잔치로만 끝나진 않았는가. 양극화에 대한 분노를 소비했을 뿐 대안을 만들진 못한 건 아닌가 반성이 필요하다.

요즘 화두가 된 재정 투입과 관련해서도 가장 먼저 생계 곤란에 빠진 이들을 도울 복지체계를 보완하는데 최우선적으로 써야 할 것이다. 관련된 예산을 확대하고 인력을 늘려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우리 사회에 절실한 것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다. 부자들이 많이 버는 만큼 많은 기부를 통해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봐야 할 것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구멍 난 만큼 소위 있는 자들의 기부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이 부분만큼은 각자도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본주의 역사가 오래된 서방에서 기부문화가 정착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불러오는 양극화의 모순이 사회시스템의 불안을 유발하는 걸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부 문화의 기저엔 가난이 악으로 변해 범죄의 도시가 되는 걸 막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자본시장부장 이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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