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글로벌 금융시장에 특이점(singularity)이 성큼 다가왔다. 특이점은 인공지능(AI)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기점을 말한다. 미국 컴퓨터 과학자이자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의 기술부문 이사인 레이먼드 커즈와일이 쓴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는 저서를 통해 유명해진 개념이다. 커즈와일은 2045년이면 인공지능(AI)이 모든 인간의 지능을 합친 것보다 강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금융시장만 한정해서 본다면 커즈와일의 예측은 빗나갔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이미 특이점을 목격하고 있어서다.

바둑 수읽기에서 인간을 넘어선 기계들은 금융기관의 트래이딩 룸에서 인간들을 내쫓기 시작했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러셀3000지수 기준으로 미국의 상장 주식 가치는 대략 31조 달러에 이른다. 인덱스펀드,ETFS,퀀트펀드 등 컴퓨터가 관리하는 세가지 형태의 펀드가 이 가운데 35%를 운영한다. 헤지펀드나 뮤추얼펀드 등 인간이 운영하는 펀드는 24% 수준에 불과하다. 나머지 40% 가량은 자사주 보유 형태 등으로 관리되고 있어 정확한 구성을 파악하기 힘든 것으로 분석됐다.

주식주문도 알고리즘 트래이더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뉴욕거래소 객장에서 아웃크라이 방식으로 호가를 제시하던 거래는 사라지고 있다. 뉴저지에 있는 컴퓨터 서버가 조용하게 기계음을 내며 거래를 대신하고 있다.







<인력에 의존하는 트래이딩부문을 사실상 없앨 예정인 도이체방크>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90%의 주식선물거래와 80%의 현물거래가 사람이 없는 알고리즘 트래이딩으로 처리되고 있다. 도이체방크는 직원 20%에 해당하는 1만8천명을 오는 2022년까지 감원할 계획이다. 트래이딩 등투자은행 부문이 고강도 구조조정 계획의 집중 타깃이다. 인력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글로벌 주식 매매·트래이딩사업부를 사실상 없앤다는 게 도이체방크의 목표다.

트래이딩 룸에 특이점이 서둘러 온 배경 가운데 하나는 저금리 기조의 고착화에 있다. 저금리 시대를 맞아 수수료가 낮은 패시브펀드가 대세를 이루고 있어서다. 많게는 20배 이상 수수료를 감당해야 하는 액티브펀드 시대가 다시 돌아오기는 힘들다. 기계가 운영하는 펀드가 대세를 이룰 것이라는 의미다.

이제는 특이점에 점령당한 트래이딩 룸이 어떤 리스크에 취약한지 분석하고 대비해야 할 때다. 플래시크래시(Flash crash·순간 폭락) 상황에서 금융안정성이 기계에 의해 어떻게 더 훼손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 핵심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한 집단 등에 부가 더 집중될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기업지배 구조가 왜곡될 수도 있다. 패시브펀드로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서다.

국내 금융기관의 트래이딩룸은 특이점이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시스템 구축비용이 워낙 큰 탓이다.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지 못한 국내 금융기관은 아직은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알고리즘 트래이딩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금융시장의 낙후된 환경 덕분에 금융시장 종사자들의 생명이 그나마 좀 더 연장되고 있는 셈이다. 다행이다. 그래도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이제 트래이딩룸에서 제일 똑똑한 건 인간이 아니라 기계다. 이세돌 9단이 바둑에서 더는 알파고를 이길 확률이 없듯이...(취재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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