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의 배상 비율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은 이번 사태가 은행의 도덕 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이 금융감독원의 분쟁 조사과정에서 PB에게 불완전판매 부인을 유도하는 별도의 문답서를 내부용으로 작성해 활용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금융권 안팎에 충격을 주고 있다.

5일 금융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A은행은 DLF 사태 이후 PB를 지원하고자 내부용 법률상담 문건을 작성했다. 해당 문건은 111개의 질의응답으로 구성됐다.

문건은 금감원 조사역이 관련 증거를 제시하는 경우 우선 '그런 적 없다'와 '기억 없다'는 취지의 부인 답변을 하라는 내용이 적시됐다.

A은행은 지난 7월 두 차례에 걸쳐 실시한 자체 조사에서 불완전판매로 확인된 건에 대해 금감원에 불완전판매를 부인하는 내용의 사실조사 답변서를 제출했다.

이 은행은 DLF 상품의 타깃층을 정기예금 선호고객으로 선정했다. 영업 포인트로 원금손실 가능성이 낮은 확정 금리형펀드임을 강조, 예금형 선호 고객이 갈수록 떨어지는 예금금리에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상품임을 설명할 것으로 지시했다.

상품구조가 복잡했지만, 이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교육자료도 마련하지 않았다. 이에 자산관리 전문성을 보유한 PB임에도 상품 구조나 손실 위험을 잘못 설명한 사례가 많았다.

실제로 A은행이 판매한 영국·미국 CMS 금리연계 DLF의 경우 상품제안서의 수익구조와 계약조건을 정확히 반영한 수익구조는 크게 다르다.





운용사의 사전 시뮬레이션에 대한 자체 리스크점검도 하지 않고 상품을 판매했다. 물론 상품출시위원회의 승인도 없었다.

다른 B은행은 요식행위에 가까운 상품선정위원회를 열었다. DLF 판매에 반대의견을 구두로 표명한 위원을 상품 담당자와 친분 있는 직원으로 교체해 찬성의견을 내도록 종용했다. 평가표 작성을 거부하면 찬성으로 임의 기재했다.

내부 실무자의 사전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이 역시 묵살됐다.

B은행이 DLF 상품 판매에 드라이브를 걸기 직전인 올해 3월 한 실무자는 기초자산 가격이 과거 9개월간 최대 0.79%포인트(p)까지 하락한 사례가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지적했다. 향후 금리가 추가로 하락할 가능성이 있고 높은 레버리지를 고려하면 원금 100% 손실이 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해당 문제 제기에 대한 검토만 했더라도 이번 사태를 막을 수 있었던 셈이다.

A은행과 달리 B은행은 별도 교육자료를 만들었다. 하지만 '손실 확률 0%'와 같은 긍정적인 내용만 강조했다. 특히 계열회사 금융연구소에서 비슷한 시기 금리하락을 예측했음에도 이와 달리 금리 상승 가능성을 언급하며 이익 실현을 전망하는 내용을 담았다.

내부에서 제기된 '원금 100% 손실 가능'에 대한 내용은 배제됐다.

이에 B은행 대부분의 PB는 이번 상품이 원금손실 없는 안전한 상품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상품 역시 계약 조항을 모두 반영하면 투자자가 얻게 될 수익률 그래프가 급격히 하락한다.





B은행은 DLF 상품의 만기를 짧게는 4개월, 길게는 6개월로 설정해 연간 수수료를 2~3번 받을 수 있도록 설정했다. 선취수수료 '2·3모작 상품'으로 강조해 직원들에게 판매를 독려했다.

영업본부장은 고객 수와 금융수신 관련 KPI(핵심성과지표)를 일별로 관리했다. 그룹 차원의 자산관리 수수료 수익 목표치를 매년 확대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은행의 내부통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예"라며 "분쟁 조정 비율이 80%까지 상향 조정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jsjeong@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7시 22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