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예원 기자 = 지난 2008년 불거진 키코(KIKO) 사태가 약 10년만에 불완전판매를 인정받은 가운데 배상 여부에 대한 칼자루는 결국 은행이 쥐게 됐다.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는 13일 일성하이스코·남화통상·원글로벌미디어·재영솔루텍 등 4개 기업이 신청한 분쟁조정에 대해 은행의 불완전판매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손해배상비율은 손실액의 15%에서 41%까지로 결정됐다.

은행별 배상액은 신한은행이 15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우리은행 42억원, KDB산업은행 28억원, KEB하나은행 18억원, 대구은행 11억원, 씨티은행 6억원 순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배상을 실행할 지 여부가 은행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분조위는 강제성이 없는데다 법적 효력도 없기 때문에 당사자 모두가 수용하지 않으면 조정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상대 금감원 분쟁조정2국 국장은 금감원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분쟁조정은 조정 권고이기 때문에 은행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아직까지 미리 수용 여부를 밝힌 은행도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피해 기업들과 은행들 간에 협상력 차이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피해 기업들의 경우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배상비율이 분조위 조정안보다 높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데다 손해액 청구 소멸시효도 만료돼 재판이 유리할 것이라고 보기 어려워서다.

당장 이번 결정에 대해서도 은행권에서는 내부적 검토와 이사회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 시중은행장도 이에 대해 "이사회 기능이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지금 말씀을 드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되레 이번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이사회의 부담이 커지게 됐다.

결정을 번복한다면 배임 이슈가 생기지만 소비자 보호 등을 고려한다면 분조위 결정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번 분조위에 올라간 4개 기업의 손해액 청구 소멸시효는 이미 만료된 데다 분조위 권고를 수용해야 하는 의무도 없는데 배상이 결정될 경우 업무상 배임에 해당될 수도 있다.

키코로 피해를 본 기업 중 아직 소송이나 분쟁조정 신청을 하지 않은 기업이 150여개에 달하는 가운데 이번 안을 수용하면 분쟁조정이나 소송이 줄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사태로 인해 금융당국이 은행권 불완전판매에 철퇴를 가한 만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사회적 지탄을 피하기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과의 관계에 대한 복잡한 셈법도 있다.

키코 사태에 대한 재조사가 착수되고 분조위까지 상정되기까지 윤석헌 금감원장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만약 은행들이 키코 분조위 결과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윤 원장이 강력하게 추진해 온 사안이 해결되지 못하는 것이니만큼 금감원에서도 물러서기란 어렵다.

이런 가운데 은행들은 분조위 결과가 나오면 논의에 착수했다는 신호를 금융당국에 보이기 위해서라도 이달 예정된 이사회에 안건으로 상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 시중은행 이사회 관계자는 "과거 이사회의 결정을 뒤집어야 하는 사안이라 당장 결과를 내다보기 쉽지 않다"면서 "과거 이사회가 결정을 했을 때와 사회적 흐름이 바뀌었다는 점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이사회 역시 넓은 범위 안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비용적 요소에 대한 시뮬레이션과 은행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 브랜드 이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ywkim2@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1시 40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