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기업들에 올 겨울은 어느 때보다 추울 것 같다. 미중 무역 싸움에서 시작된 글로벌 교역 악화의 파장이 수출을 넘어서 내수로까지 파급되고 있다. 기업들은 아우성친다. 내년도 경영전략을 짜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하는 시즌이지만 구체적인 방향을 잡기조차 어렵다는 호소가 잇따른다. 기업들이 가장 싫어하는 변수는 불확실성이다. 앞날이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뭔가를 준비해야 하는 것만큼 곤혹스러운 것도 없다. 초미세먼지만큼 어두운 불확실성이 기업들을 시커멓게 둘러싸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사업재편이란 명목으로 각종 사업을 쪼개고 붙이고, 팔기를 반복한다. 그런 가운데 결국 사람의 목숨줄도 건드리고 있다. 생존의 가장 기본이 되는 고용도 희망퇴직, 무급휴직이란 이름으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말이 사업재편이지 사실상 구조조정이다. 과거 정부와 채권단이 주도해 중후장대 산업에 메스를 들이대던 것과 상황은 물론 다르다. 채권단이 찾아와 "장부 좀 봅시다"하는 상황에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일단 먼저 나서고 있다. 욕보지 않기 위해선 미리미리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쯤은 기업도 이젠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을 호령하던 LG디스플레이는 중국발 액정표시장치(LCD) 공세에 결국 비상경영 체제로 들어갔다. 최고경영자는 자리에서 물러났고, 임원과 조직도 25% 줄였다. 희망퇴직은 기본이다. 인력이 줄어든 조직들은 통합한다. 내년 투자도 줄인다. 결국 감산 체제에 돌입한다. LG디스플레이의 경쟁자인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주력 수출 품목인 디스플레이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출이 빨리 플러스로 돌아서길 기대하는 것은 그저 기대일 뿐이다.

유통업계는 더욱 심각하다. 드라마틱한 성장세를 보이는 온라인쇼핑에 일격을 당한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말 그대로 악착같이 버티고 있다. 비대칭 규제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해 달라고 말도 못꺼내고 있다. 국내 대표 대형마트인 이마트는 물론 대형 백화점의 최고경영자는 결국 자리를 내줘야 했다. 수백·수천억 원의 적자를 보면서도 온라인 쇼핑몰은 외형을 키우기 위해 '닥공'하고 있다. 결국 오프라인 업체들은 온라인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과 인력을 대거 투입하고 있다. 늦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 지체하다가는 아예 시장을 모조리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고 있다.

항공사들은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한일 무역 분쟁에서 비롯된 불매운동의 불똥에 실적이 고꾸라졌다. 중국과 동남아 노선을 확대하면서 이를 만회하려고 하지만 이미 경쟁 강도는 너무 세져서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저가 항공사 인가를 남발한 탓이다. 그렇다 보니 항공사고도 잦아지고 있다.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수익 저하와 안전사고의 상관관계는 무시할 수 없다.

신용평가사들은 실적과 재무구조가 취약해진 기업들을 상대로 줄줄이 신용등급을 내리고 있다. 기업의 신용등급이 강등된다는 것은 구조조정을 빨리하라는 신호탄이다. 이를 지체했다가는 채권단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 웃으며 돈을 빌려줄지는 모르지만 받아 갈 땐 매몰찬 게 금융시장이다. 그동안 그러한 경험을 해본 기업들 입장에선 다시 반복하기 싫을 것이다. 그래서 더 가열차게 미리미리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정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급격한 변화 속에서 산업 생태계가 망가지고 있지만,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구조조정을 독려하든지, 아니면 파격적인 지원을 통해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하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그러면서 기업들에 투자하고 고용을 늘리라고 할 염치가 있는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구조조정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측면 지원하지 않는다면 정부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성장률 2.0%라도 지키고 싶다면 기업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세세하게 봐야 한다. 먼 산 바라보듯 남 일처럼 있을 때가 아니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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