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드라마 단골 소재로 쓰이는 재벌가 싸움이 또 터졌다. 이번엔 주인공이 형제에서 남매로 바뀌었다. 예견됐던 싸움이 현실화했을 뿐이다. 하지만 똑같은 레퍼토리의 드라마를 강제로 또 봐야 하는 시청자들은 짜증이 난다. 아무리 골육상쟁의 막장이어도 한 줌의 감동과 눈물이 있어야 시청률도 기대해볼 만한데 이번 싸움에서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은 사치일 것 같다. 애당초부터 시청자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은 드라마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조원태·조현아·조현민. 재벌가 자녀 중 최근 몇 년간 이들처럼 욕을 많이 먹은 사람들이 있을까. 레전드급 갑질로 명명된 '땅콩 회항'과 '물컵 갑질'. 명품 밀수입과 무지막지한 '샤우팅'까지.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에게 요구되는 재능은 모두 갖췄다. 하지만 이들이 보이는 연기는 매력이 없다. 그럴싸해 보여야 몰입도가 높아질 텐데 연기 자체가 실화다. 그러니 드라마가 아닌 다큐가 돼 버렸다.

고(故) 조양호 회장이 70세의 나이로 이국만리인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것은 지난 4월 8일이었다. 딱 8개월 보름 만에 그의 자녀들은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기 시작했다. 그가 남긴 재산을 골고루 나눠준 지 채 두 달도 안된 시점이다. 삼년상을 치르는 경우는 이젠 찾아볼 수 없다. 그래도 돌아오는 첫 1주기까지 마음속의 상을 치르는 게 자녀의 도리다. 하지만 그런 염치는 없었다. 아버지가 남겨준 숟가락 금붙이의 크기와 무게를 따지는 게 더 중요했다. 아버지는 이미 떠났으니.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유훈을 무기로 삼는다.

조 남매 트리오가 가진 한진칼 지분은 각각 6.52%(조원태), 6.49%(조현아), 6.47%(조현민)에 불과하다. 조현아의 '선전포고'로 이들이 가진 지분은 합쳐서 생각해선 안 될 것이 돼 버렸다. 흔히 '한진그룹 오너 일가 지분'으로 뭉뚱그려 고려하던 게 의미가 없어졌단 얘기다. 6%가 조금 넘는 지분이 적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많지도 않다. 한 줌도 안되는 지분을 들고 3조(한진칼 시가총액)짜리 회사를 먹겠다는 것 아닌가. 너무도 염치가 없는 것은 아닌지. 주머니 속 쌈짓돈으로 동네 슈퍼마켓을 다 먹겠다고 덤비는 것과 뭐가 다른가. 행동주의 사모펀드가 지배구조를 개선하라며 17% 넘는 지분을 사들이면서 위협하고 있지만, 이들에겐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나 보다.

한진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은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직원들을 내보내기 위해 6년 만에 희망퇴직도 받고 있다. 임원도 20%나 줄였다. 언제 실적이 회복될지 가늠도 할 수 없는 시계 제로 상황이다. 또 직원들을 내보내야 할 수도 있다. 언제나 그랬듯 희생은 직원들이 치르고 모든 부끄러움도 직원들이 감내하고 있다. 조 남매 트리오에 이런 것은 고려의 대상이 아닌 듯 보인다. 실체도 없는 '아버지 뜻'을 빌미로 아버지가 물려준 금수저를 두고 '내 것이 작네, 네 것이 크네' 하면서 싸움을 하겠다니 참 염치도 없다. "내가 주인하겠다"며 더 많은 지분을 가진 누군가가 나타나야 정신을 차릴 것인지. 염치가 있어야 내 편도 생기는 법이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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