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 결연해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신년사에서 "부동산 시장의 안정과 실수요자 보호, 투기 억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다음 날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한 발 더 나갔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 실장은 "(더 센 정책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메뉴판 위에 올라와 있는 모든 정책수단을 풀가동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마음만 먹으면 부동산시장의 자금줄을 통제할 수 있는 금융당국도 팔을 걷어붙였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금융투자업계 CEO 간담회 자리에서 대출 규제에 더해 건설업계에 자금을 공급하는 문제도 들여다보겠다는 의중을 전했다. 그는 "중소기업에 공급돼야 할 자금이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부동산 개발사업 등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통화당국인 한국은행은 아직 완화 기조를 고수하는 분위기다. 다만 금리 결정에 있어선 선택의 여지가 많지는 않아 보인다. 역으로 부동산 투기를 조장할 수 있는 추가 기준금리 인하는 당분간 선택하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부동산 대책 주무 부처인 국토부와 경제 컨트롤타워 기획재정부, 여기에 청와대와 금융당국까지 전방위로 나서는 상황에서 금리 인하 결정은 현 정부 정책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 될 수 있다.

통화정책 방향에 민감한 채권시장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가 약해졌으니 당연히 약세 쪽이다. 이란의 미군 기지 공급이 단행된 지난 8일 국고채 금리는 상승 마감했다. 장 초반 금리가 급락했지만, 이란 사태 긴장이 다소 완화한 데다 김상조 실장의 강력한 발언이 전해지면서 약세로 돌아섰다. 지난 9일에도 국고채 금리는 큰 폭으로 올랐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 규제에 집중하면서 한국은행 통화정책도 경기 상황보다 금융안정 목표에 더 방점을 찍을 것이란 인식이 채권시장 전반의 심리를 장악했다.

이런 점만 보면 정부의 부동산 투기 억제책은 채권시장에 큰 악재다. 하지만 수급 요인에는 적잖게 플러스 요소가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투자 주체나 자금 성격 자체가 많이 달라 당장 부동산 자금이 채권시장으로 옮겨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신 부동산 투자나 대출 상품에 열을 올렸던 주요 기관의 운용 행태에 변화가 생길 수 있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국내 채권시장 투자 비중 20%를 웃도는 '큰 손' 은행권의 변화 가능성이다. 상당 기간 은행의 주요 수익원은 대출이었다. 국내 5대 은행의 지난해 가계대출 규모는 600조원대를 돌파했다. 이 중에서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70%를 웃돈다. 부동산 투기 억제책으로 주택담보대출 길이 막히면 은행은 다른 투자처를 찾아야 한다. 은행이 고위험 투자를 선호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고려하면 가장 유력한 대체 투자자산은 채권이다. 어느 정도 규모로 돈의 물꼬가 트일지 장담하기 어렵지만, 올해 채권시장 전반에 훈풍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한은의 금리 인하 기대 약화에 따른 채권시장 충격파가 얼마나 갈지도 의문이다. 부동산 투기 억제책이 나오기 이전에도 상반기 금리 인하 기대는 그렇게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화정책 이슈를 마찰적 요인 정도라고 본다면 적어도 채권 투자를 포기할 때는 아니다. 경기 비관론자가 유독 많은 곳이 채권시장이기는 하지만, 하반기 큰 장을 대비해 매수 기회로 삼는 플레이어도 적지 않다고 한다. 우리 경제의 회복 가능성에 의문을 갖는 '선수'들의 선제적 베팅이다. (금융시장부장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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