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IBK기업은행은 경쟁자가 없다. 그 흔한 방카슈랑스조차 팔지 않아도 된다. 비이자이익에 목마른 은행이 방카슈랑스를 핵심성과지표(KPI)에서 제외한 것은 적잖은 용단이다. 행원을 '팔이'로 만들지 않아도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정부가 대주주인 점을 차치하고도 다른 은행은 기업은행을 부러워한다.

그런 곳에 윤종원 행장이 왔다. 노동조합은 윤 행장이 전문성이 없다며 길을 막았다. 이에 대해 윤종원 행장은 경력을 보고 평가해달라며, '함량 미달'이라는 수식어를 첫날부터 거부했다. 한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에게 윤 행장의 금융 전문성에 관해 물었다. 그는 '오버 케파'라고 진단했다. 또 자존심 강한 윤 행장에게 능력 운운하는 지적은 참기 어려웠을 것이라고도 했다.

기획재정부에서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거쳐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그의 경력은 실상 차고 넘친다. 경제관료 요직으로 통하는 경제정책국장과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을 역임한 것은 물론 과거 재정경제원 시절에는 금융정책실 금융정책과에서도 오래 근무했다. 그런데도 윤 행장의 출근길은 여전히 막혀있다. 그를 막아서는 이들의 생각이 서로 달라서다.

기업은행 노조는 이 싸움의 승패를 안다. 대통령이 임명한 은행장을 막아내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10년 만에 외부에서 온 행장에게 순순히 자리를 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는 조합원들의 표심이 모여 꾸려진 노조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렇게 행장 길들이기를 위해 노조는 싸움을 시작했다. 앞으로 3년간 행장을 상대로 힘 있는 카운터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다.

기업은행 노조의 뒤에 서 있는 금융노조는 더 큰 꿈을 꾼다. 작년 말 새롭게 꾸려진 금융노조는 첫 과제로 기업은행장 낙하산 저지투쟁을 내세웠다. 오는 4월 총선에서 민주당 낙선운동, 나아가 정권퇴진운동까지 거론한다. 이 과정에 수출입은행의 노동이사제 이슈도 이따금 꺼낸다. 총선을 앞두고 노동이사제가 부상한다면 가장 큰 수혜자는 금융노조다.

윤 행장이 기업은행으로 출근하던 첫날, 기업은행 집행 간부들도 노조가 친 바리케이드 옆에 서 있었다. 기다렸던 행장과의 첫 대면, 환영 인사를 위해서다. 하지만 그들에겐 더 중요한 인사가 있다. 기업은행은 통상 1월 원샷 인사를 해왔다. 조직 안팎에서 잡음이 생긴 지도 오래다. 해묵은 후배와의 마찰부터 친여권 인사를 내세운 줄 대기까지 다양하다. 누군가에게는 노조와의 마찰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

어느 조직이나 정쟁은 있기 마련이고, 명분과 실리는 저마다 다르다. 시중 은행원들이 다니고 싶어 하는 은행으로 손꼽히는 기업은행도 예외는 아니다. 그 정치 싸움에 '직원이 행복한 은행'이라는 기업은행의 수식어가 퇴색할까 봐 걱정이다. '오버 케파'라는 행장은 행원들의 행복을 지켜낼 수 있을까. (정책금융부 정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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