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염치(廉恥).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는 사전적 뜻을 가진 말이다. 최근 은행권을 포함한 금융지주 등에서 찾아보기 힘든 단어이기도 하다. 금융 당국은 염치가 사라진 금융권에 대해 감독권도 제대로 발동하지 못하고 있다. 관치금융에 대한 비판적 여론만 살피느라 규제에 포획된 결과다. 유약해 빠진 금융당국이 넋을 놓고 있는 사이에 은행권 구성원들은 제동장치 없는 기관차처럼 폭주하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금융지주 회장부터 사원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선임된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은 열흘째 출근을 못 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윤행장이 관료출신의 낙하산이라며 출근을 저지하고 있어서다. 윤행장은 지난해까지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정통 경제금융 관료다.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를 지내는 등 국제금융가에서도 인정한 금융전문가다. 특히 윤행장이 IMF 재임시절 발표한 워킹페이퍼(Working Paper)는 글로벌 금융권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금융권 관계자들은 윤행장의 출근을 저지하는 명분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기업은행이 정부가 대주주로 있는 국책은행이라는 이유에서다.주주자본주의에도 어긋난다는 지적까지 일고 있다. 기업은행은 그동안 내부에서 행장이 발탁됐지만 과거 관료 출신이 행장일 때와 차별화된 행보를 보이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업은행은 관료 출신인 고 강권석 전 행장이 이끌었던 2004년부터 2007년 사이에 대약진했다. 2003년 3월13일 4천300원으로 역사적 저점을 확인한 기업은행 주가는 강행장 취임 이후 대세 상승세를 이어갔다. 2007년 7월26일 2만3천500원은 기업은행 주가의 역사적 고점으로 남았다.

이후 기업은행 사령탑으로 부임한 윤용로 전 행장도 정통 금융 관료출신이었다. 윤 전행장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기업은행이 앞장서야 한다며 국책은행으로서 소임을 다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곤두박질쳤던 기업은행 주가도 윤 전 행장 재임시절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1만3천원~1만5천원 사이의 박스권을 회복했다.

윤 전 행장을 끝으로 기업은행 출신이 세 번 연속 행장을 맡았지만 차별화된 행보를 보여주지 못했다. 주가 흐름만 보면 관료 출신의 행장 선임을 막을 명분이 강하지 않은 셈이다. 윤종원 신임 행장이 출근 저지로 곤혹을 치르는 사이에 기업은행 주가는 3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권리락 등을 감안해도 좋은 흐름은 아니다.

이와 달리 일부 금융지주는 경영진이 셀프 연임에 나섰지만 노조 등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부 금융지주의 경우 편법적인 수단이 동원됐지만 금융당국도 수수방관하고 있다. 한 곳이 편법 셀프 연임을 시도하자 다른 곳은 더 대담한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 당국이 물러터졌다는 점을 간파한 결과다. 이 과정에서 금융권 관계자들의 염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연임을 넘어 3연임을 굳힌 경영진까지 등장하고 있다. 연임한 금융지주 경영진 등은 전문성을 강조하지만 재임기관 중 은행권 등 금융지주의 전당포식 영업이 선진화됐다는 경영지표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은행권이 수수료 수익에 눈이 멀어 폰지사기 형태의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등 모럴헤저드 양상만 강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은행권 등 금융지주의 위험은 공공이 부담하고 이익은 사유화하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늦기 전에 금융당국 등이 금융기관의 사유화 움직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금의 은행시스템은 공적자금이 무려 160조원이나 투입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은행권 등 금융지주는 구성원만의 사유물이 아니라는 의미다.

관치금융은 염치라도 있다. 후배 관료와 여론 등의 눈치를 살펴야 하기 때문에 연임을 꿈꿀 수 없어서다. 염치가 사라진 금융권은 관치보다 더 위험해질 수 있다. (취재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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