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올해 첫 사장단 회의에서 작심 발언을 쏟아낸 것은 강한 위기 의식을 조직 전반에 불어넣어 열악해진 사업환경을 극복할 강한 동력을 찾으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적당주의로 안일하게 대응했다간 그간 유지해 왔던 업계 1위라는 지위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강한 경고를 보낸 것으로, 올해 반드시 혁신을 이뤄내야 하는 신임 사장단의 부담감은 그만큼 더 커지게 됐다.

16일 롯데지주 등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전날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정례 사장단 회의인 '2020 상반기 롯데 VCM(Value Creation Meeting)' 열었다.

지난해 말 그룹 전체의 40%가 넘는 22개사 대표를 교체하는 대규모 물갈이 인사를 단행한 뒤 신 회장과 새 임원들이 처음 만나는 자리로 황각규, 송용덕 부회장을 비롯해 유통·화학·식품·호텔&서비스부문(BU)장, 각 계열사 사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서로 안부를 묻고 승진한 임원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던 예년 분위기와 달리 회의에 참석하는 임원들의 표정은 어두웠고, 회의장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오후 2시에 시작된 회의는 예정 시간을 30~40분 넘겨 저녁 7시께 끝났다.

롯데중앙연구소의 올해 경제전망에 이어 황 부회장이 지난해 그룹사 성과 리뷰 및 중기 계획을 발표했고, 송 부회장이 올해 그룹 주요 이슈와 전략을 소개했다.

사업별 전략 발표 등 모든 순서가 끝날 때까지 신 회장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발표 내용은 다소 어두웠다. 지난해 실적도 부진했을 뿐 아니라 올해 전망도 밝지 않았다.

신 회장은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발표 내용을 경청했고, 사장단도 숨죽였다.

마지막 순서로 발언한 신 회장은 "오늘은 듣기 좋은 이야기를 드리지는 못할 것 같다"며 운을 뗐다.

그는 그룹의 양대 축인 유통과 화학부문의 실적 하락을 직접 꼬집으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지속 성장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이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3분기 22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으로 충격을 줬다.

오프라인 유통 시장 침체에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실적 부담을 가중되면서 백화점·마트·수퍼마켓 등 모든 계열사가 부진했다.

신 회장은 지난 연말 임원 인사에서 문영표 부사장이 롯데마트 사업부장으로 유임된 것을 제외하고는 4개 사업부 수장을 모두 교체했다.

롯데케미칼 역시 글로벌 업황 악화로 지난해 3분기까지 연결기준 영업이익 9천564억원으로 전년대비 반토막 났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조원에도 못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캐시카우 역할을 해 온 두 사업 부문의 부진은 그룹 전체에 큰 타격을 줬다.

신 회장은 "우리 그룹은 많은 사업 분야에서 업계 1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성장해왔지만, 오늘날도 그러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과거의 성공 방식에 매달리거나 적당주의에 젖어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도 거듭 강조했다.

신 회장이 이날 회의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디지털과 혁신, 게임 체인저였다.

특히 신년사에서도 강조한 게임체인저는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꿔야 한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고 해석된다.

롯데는 올해도 비상경영체제를 이어갈 방침이다.

지난해 10월 개최한 롯데그룹 경영 간담회에서 황 부회장이 전 계열사의 비상경영체제 전환을 선포한 이후 아직까지 계열사들이 경쟁력을 높이지 못한 상황에서 올해 경기가 급격히 꺾일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VCM 가운데 가장 분위기가 안 좋았다"면서 "일부 임원들은 한숨을 쉬기도 했으며 많은 숙제를 안고 돌아간 만큼 고민도 더욱 깊어졌다"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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