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유니콘 환상
[데스크 칼럼] 유니콘 환상
  • 고유권 기자
  • 승인 2020.01.2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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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서양 문학 작품에서 자주 언급되는 미지의 동물이 있다. 형체는 말인데 앞머리엔 뾰족한 뿔을 달고 있다. 유니콘이다. 영화 속에서도 하얀색의 유니콘은 자주 등장한다. 강한 아우라를 뒷배경 삼아 나타나 언제나 신성시되는, 신화 속 동물로 포장된다. 직접 목격한 적이 없기에 사람들에겐 늘 동경의 대상이 된다. 동경은 곧 희망으로 변하곤 한다. 2017년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상영된 영화 유니콘 스토어도 그런 '희망과 꿈'을 찾는 키트의 삶을 다뤘다. 꿈은 무언가를 시도하기 위한 시작이다.

미국의 벤처캐피탈인 카우보이 벤처스의 창업자인 에일린 리는 2013년 IT전문매체인 테크크런치에 'Welcome To The Unicorn Club'이라는 글을 기고한다. 여기서 처음으로 유니콘 기업이라는 말이 나온다. 유니콘이 그렇듯 흔하지 않은 일을 해낸 기업들을 유니콘 기업으로 정의한다. 그러면서 4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제시한다. 창업한 지 10년 이내의 기업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기술력을 갖춘 비상장사여야 한다고 했다. 요즘엔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을 통상 유니콘 기업으로 부른다.

수출 주도의 제조업이 중심이던 대한민국 경제는 우울하다. 산업구조의 변화 속에서 경제를 이끌던 핵심 업종들은 대외적, 구조적 요인에 따라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40년 넘게 우리를 먹여 살렸던 전통 제조업이 더는 희망과 꿈이 될 수 없다는 비관론도 적지 않다.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 위기는 그래서 더 크다. 경제의 총량을 고민해야 할 정부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새로운 산업 태동을 위한 각종 지원책을 쏟아낸다. 그중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게 단연 유니콘 기업이다. 유니콘 기업은 신성장동력이란 말로 포장된다. 아래쪽으로만 향하는 미끄럼틀의 방향을 다시 위로 올려줄 희망과 꿈처럼 얘기된다.

미국의 스타트업 정보업체인 CB인사이츠에 따르면 한국의 유니콘 기업은 10개다. 214개의 미국과 101개의 중국과 비교하면 한참 뒤진다. 22개의 영국과 19개의 인도, 12개의 독일에 이어 6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아주 많이 뒤처졌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유니콘 기업이 생성되는 속도를 보면 미국과 중국을 따라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난해 미국에서 새로 탄생한 유니콘 기업은 무려 71개에 달한다. 미국에 비할 바 못 되지만, 중국의 16개 기업도 새로 유니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정부는 2022년까지 유니콘 기업을 지금보다 두 배 많은 20개로 늘리겠다고 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2호 공약으로 2022년까지 30개의 유니콘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각종 지원책을 내놨다.

20개이든 30개이든 유니콘 기업이 더 많이 탄생해 우리 경제에 활력이 된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기업가치가 높다고 모두 좋은 기업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는 빈약하다. 한국의 10대 유니콘 기업 중 절반은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기업들이 어떻게 기업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일 수 있느냐는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유니콘 버블'의 대표 격인 우버와 위워크 사례에서도 기업가치라는 게 얼마나 허상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금융자본이 IT와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잘 보여준 결과다.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갖춘 스타트업에 대한 금융자본의 수혈은 필수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얼마나 뻥튀기되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도외시 되는 경향이 많다. 돈이 몰리면 항상 버블은 생기기 마련이다.

한국의 10대 유니콘 기업들을 장악한 주주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계 자본이다. 자본은 늘 뒤에 벌어질 일을 계획하고 돈을 넣는다. 선의의 투자자란 없다. 돈을 넣고 기업가치를 올려 높은 수익률을 달성하고 팔고 나가는 게 그들의 일이다. 속성 자체가 그러하니 뭐라 할 일은 아니다. 인수·합병(M&A)이 됐건 기업공개(IPO)가 됐건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시도가 본격화할 것이다. 주주 간 손바뀜을 통해 새로운 자본이 수혈되고 그것을 다시 종잣돈 삼아 기업가치를 더욱 높인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영업실적은 바닥인 상황에서 기업가치만 뻥튀기된 유니콘 기업들에 과감하게 돈을 더 넣을 투자자들이 많을까 싶다. 유니콘 기업이 새로운 경제를 일으킬 꿈이 되길 기대하지만, 일장춘몽(一場春夢)의 환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새겨야 한다. 기업은 새로 생기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망하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pisces73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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