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2020년 1월 29일은 골드만삭스의 151년 역사에서 기념할 만한 날로 기억될 것 같다.

골드만삭스는 창립 이후 처음으로 뉴욕 본사에서 '투자자의 날'(Investor Day)을 열었다. '월가의 난공불락 블랙박스', '철저한 비밀주의' 골드만삭스가 처음으로 만천하에 베일을 벗은 것이다.

첫 투자자 설명회는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어졌다. 주주와 애널리스트는 물론, 미디어, 심지어 규제 당국도 투자자의 날에 초대됐다.

데이비드 솔로몬 최고경영자(CEO), 존 월드런 최고운영책임자(COO), 스태픈 셔르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C-Suite'을 포함해 26명의 경영진이 프리젠터로 총출동했다.

환영 인사 이후 '전략:로드맵과 목표'라는 주제로 첫 프리젠터로 나선 솔로몬 CEO는 자기자본이익률(ROE) 13%라는 중기 목표를 제시했다.

유형자기자본수익률(ROTE) 14%, 비금리비용 대 매출액 비율(efficiency ratio) 60%, 보통주 자본비율(CET 1ratio) 13~13.5% 등으로 골드만삭스가 좀 더 가치 있는 회사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솔로몬 CEO는 "손뼉을 치고 싶을 때는 자유롭게 쳐도 좋다"는 농담을 첫 마디로, 경직된 분위기를 푼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활발한 소셜 미디어 활동을 하고, DJ를 부업으로 병행하는 고정관념을 깬 CEO다.

그는 골드만삭스의 전략을 3가지로 요약했다. 투자은행과 같은 기존 사업부를 방어하고, 메인 스트리트에 새로운 사업을 추가하며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간단해 보인다면 그것이 바로 요점"이라고 말했다.

ROE 13%를 달성한다면 골드만삭스의 가장 큰 경쟁자인 JP모건 체이스와 비슷해진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소비자금융과 같은 신사업 투자, 말레이시아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법적 비용 등으로 10%의 ROE를 기록했다.

솔로몬 CEO 체제 이후 골드만삭스는 기존 골드만삭스답지 않은 여러 파격 행보를 보인다.

주요 경영진을 교체했고, 비대해진 파트너 수도 줄였다. 골드만삭스의 파트너는 '일 잘하면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월가를 상징하는 인센티브였다. 금융위기 전 호황기에 골드만삭스는 많은 직원을 파트너로 승진시켰고, 파격적인 보상 등으로 월가의 부러움을 샀다.

경영진은 뉴욕 본사 41층 사무실에서 12층 개방형 사무실 공간으로 이전했다. 폐쇄된 사무실에서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한눈에 볼 수 있다면 이제는 직원들이 모여있는 한 가운데서 업무를 봐야 한다.

또 직원들에게 "근무지를 더 편안한 환경으로 바꾸기 위해 우리는 지금이 폭넓고 유연한 드레스코드로 변화할 적기"라고 알렸다.











골드만삭스가 걸어온 길은 곧 월가의 트렌드였다. 선택과 집중은 골드만삭스의 상징이었고, 투자은행과 트레이딩에서는 절대 강자였다.

그런 골드만삭스도 달라지고 있다. 다변화를 외치고 디지털 은행으로 탈바꿈하겠다고 선포했다. 외부 공개 불가 방침이던 트레이딩 코드도 대중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솔로몬 CEO 이후 골드만삭스는 대기업들의 현금 관리와 같은 더 평범한 서비스도 한다. 소매금융과 신용카드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이에 맞춰 조직에도 변화를 줬다.

골드만삭스는 기관고객 서비스, 투자 은행, 투자 매니지먼트, 투자·대출 사업 등 기존 4개 부문을 글로벌 마켓, 투자 은행, 자산 관리, 컨슈머&웰스 매니지먼트로 개편했다. 이전 투자 매니지먼트 부문 아래에 있던 컨슈머&웰스 매니지먼트를 승격했다.

이런 변화는 위기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투자은행과 트레이딩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예전 같지 않다. 실적 변동성도 커 주주들의 불만도 컸다.

한때 월가를 호령하던 골드만삭스 주가는 2008년 이후 시장이나 경쟁자에 비해 많이 오르지 못했다. 첫 투자자의 날 행사 다음날 주가도 하락세로 반응했다.

반면 JP모건과 다른 라이벌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JP모건은 2009년 저점과 비교할 때 10배 올라 기업가치면에서 골드만삭스를 압도했다.

솔로몬 CEO는 "골드만삭스를 보다 투명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실질적이고 중요한 조치를 하고 있다"며 "우리의 노력과 목표를 시장에 좀 더 명확하게 알리겠다는 지속적인 약속이 이번 투자자의 날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월가에서는 그동안 넘볼 수 없는 위치, 엄청난 수익성이라는 명성을 얻었던 골드만삭스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다고 외부에 선포하며 비밀스러운 껍질을 벗었다고 평가한다. 변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세상은 월가의 거인도 피해갈 수 없다. (곽세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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