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원 기자 = 한진가(家)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결국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등을 돌리면서 양측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

그러면서 한진가의 일탈과 한진그룹의 불투명한 지배구조 문제를 지속해 제기해 온 행동주의 펀드 KCGI와 손을 잡기로 해 '적과의 동침'을 선택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진가의 일원인 조 전 부사장이 가족이 아닌 '외부세력'과 손을 잡고 가족과 한판 싸움을 벌이기로 하면서 한진가와 한진그룹 내부는 적잖은 충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 전 부사장이 KCGI와 손을 잡을 수 있었던 데는 한진그룹 경영권 장악을 위해 자신이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 전 부사장과 KCGI, 반도건설은 31일 각자 보유하고 있는 한진칼 지분을 공동 보유하기로 합의하고 3월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공동 전선을 펼치기로 했다.

조 전 부사장 등 3자는 설 연휴 전후로 수차례 회동을 하면서 공동 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조 전 부사장은 한진칼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주주로서의 역할만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부사장의 이러한 입장에 KCGI와 반도건설이 호응하면서 결국 '연합군' 결성에도 성공했다.

현 조원태 회장 체제에 맞서 한진그룹의 경영과 지배구조의 틀을 바꿔보겠다는 공통된 목적을 위해 조 전 부사장과 KCGI 모두 명분을 챙길 수 있었던 셈이다.

한진그룹 사정에 밝은 재계의 한 관계자는 "조 전 부사장이 경영복귀에 여전히 부정적인 여론이 있다는 것도 고려했겠지만 일단 세(勢)를 불려 조원태 회장 체제를 깨야겠다는 목표가 더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조 전 부사장 입장에서는 적잖은 양보를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진그룹의 경영행태와 지배구조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면서 비판적 입장을 보여온 KCGI도 조 전 부사장의 이러한 입장을 통해 어느 정도 명분과 실리를 챙긴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양측과 반도건설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에 합의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주총 이후 경영과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로드맵에도 상당 부분 의견을 일치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KCGI는 그간 만성 적자를 이어온 칼호텔네트워크와 LA윌셔그랜드호텔, 송현동 호텔부지 등의 정리를 요구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은 조 전 부사장이 애착을 보여온 부문이다.

일각에서는 구체적이고 세세한 사업 내용까지 의견을 모았다기 보다는 일단 주주총회를 타깃으로 경영진 개편과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목표에 더 집중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회장을 물러나게 하고, 자신들이 추천하는 전문경영인과 이사진의 선임을 관철시킨 뒤 이후를 도모할 것이란 얘기다.

재계의 다른 관계자는 "조 전 부사장과 조원태 회장은 이전에도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면서 "조양호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와 이후 경영권 개편 과정에서 갈등이 폭발한 것으로 조 전 부사장 입장에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한진그룹 내부의 비판과 비난을 무릅쓰고서도 KCGI, 반도건설 등 외부세력과 손을 잡은 것은 결국 조원태 체제를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조 전 부사장의 강력한 생각 때문이란 설명이다.

앞서 지난해 4월 고(故) 조양호 전 회장의 별세 이후 한진가는 동일인(총수) 지정을 시작으로 상속 비율 및 상속세 납부, 남은 가족들의 경영 복귀 등 굵직한 문제들을 정리하면서 상당한 갈등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조 전 부사장의 입장은 대체로 반영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간 침묵을 지켜오던 조 전 부사장은 지난달 23일 처음으로 입장을 내고 조원태 회장의 독단적 행태를 비판하고 나섰다.

당시 조 전 부사장은 "가족들이 협력해 공동으로 운영하라는 선대 회장의 유훈과는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거듭된 요청에도 최소한의 사전 협의도 하지 않고 경영상의 중요 사항이 결정되고 발표됐다"며 조 회장 측을 격하게 비판했다.

특히, 조 전 부사장은 상속세 부담이 컸던 상황에서 조 회장이 자신의 경영 복귀를 막은 것과 자신의 측근들을 임원인사에서 배제한 것을 두고도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j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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