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스위스와 싱가포르는 잘사는 나라다. 스위스는 2018년 기준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8만2천838달러(세계2위)에 달하고 싱가포르는 6만4천581달러(세계 6위)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최상위 국가들이다. 하지만 세계 각국이 부러워하는 까닭은 따로 있다. 두 국가 모두 국민들의 소득 수준이 높으면서도 주거 만족도까지 높아서다. 미국,영국,호주,캐나다 등 이른바 영어권 부자 나라들이 치솟는 부동산 가격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것과 대비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스위스는 주택자가보유율(home-ownership rate)이 38%에 불과하다. OECD회원국 가운데 최저수준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부자인 스위스 국민들이 주택을 투자수단으로 보지 않은 결과다. 스위스 당국은 주택 소유와 주택 임차가 거의 동등한 지위를 가지도록 세제 시스템관 주택 임대차 보호법 등을 설계했다. 임차인은 20년 동안 안정적인 가격으로 주거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심지어 기준금리 하락 등을 근거로 월세를 내려달라고 요구할 권리까지 임차인에게 주어진다. 관련 법률에 따라 집주인은 임차인의 요구에 3개월안에 응해야 한다. 강력한 임대차 보호법 등에 따라 국민들이 굳이 주택을 보유하기 위해 돈을 쏟아붓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당국의 노력으로 스위스의 주택 평균 가격은 1970년대를 기준으로 70% 더 오른 데 그쳤다. 같은 기간 346%나 오른 영국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싱가포르는 스위스와 정반대의 부동산 정책 수단을 동원해 성공한 경우다. 싱가포르는 시민권을 가진 가구의 90.5%가 자기 집을 가지고 있다. 그 가운데 82%는 정부가 공급한 주택에서 산다. 싱가포르의 부동산 정책은 주택수요자의 구매력을 지원하는 데 집중돼 있다.

싱가포르는 실수요자의 주택 구매력을 높여주기 위한 방안으로 중앙연금기금(CPF:Central Provident Fund)을 적극 활용했다. CPF는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같은 성격이지만 조성기금을 가입자의 자가주택 구입지원,의료,교육 등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본보 2015년 10월12일자 '부동산정책 싱가포르에서 배워라' 기사 참조>

CPF는 일반계정(ordinary account), 특별계정(special account), 의료계정(medisave account) 등 크게 3개 계정으로 구분된다. 특별계정은 노후 자산 축적 및 강화를 위하여 은퇴 관련된 금융상품에 투자하고 의료계정은 입원과 의료보험에 사용된다. 전체의 39%로 가장 비중이 큰 일반계정이 주택구입, 교육 목적으로 사용 가능한 기금이다. 정부가 연2.5% 수익을 보장한다. CPF의 일반계정 자금은 주택구입시 초기자금(down payment) 불입에 사용될 수도 있고 매월 지급되는 원리금 상환액(monthly housingpayment)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싱가포르는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대해서는 보조금도 지급한다. 재정을 동원해서라도 자가보유율을 올리겠다는 수요자 중심의 주택정책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우리 부동산 당국도 두 나라의 사례에서 시사점을 얻을필요가 있다. 스위스 사례를 심도 있게 검토해 세제와 임대차 보호법 등 관련 제도를 보완할 시점이 됐다. 싱가포르 사례를 바탕으로 712조원에 이르는 국민연금 운영기금을 부동산 문제 해결에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돼야 한다. 국민연금 등만 인수할 수 있는 특수 채권을 일정 금리 수준에서 발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연 2%도 안되는 금리의 미국채 30년물에 국민의 노후 쌈짓돈을 묻어 두는 것보다 훨씬 안정적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주거 안정성을 서둘러 확보하지 못하면 밀레니얼 세대 등의 전면적인 인생파업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저출산과 비혼 등은 밀레니얼 세대가 베이비부머와 386세대를 상대로 벌이는 일종의 인생파업이다. 모든 부와 권력을 움켜쥐고 나누려 하지않는 기성 세대에 대한 밀레니얼 세대의 소심한 복수라고 해도 무방할 듯 하다. 아기 울음이 끊긴 나라에서 베이비부머와 386세대들만 잘사는 건 면목 없는 일이다. (취재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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