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1918년 미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H1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6개월 뒤 유럽과 아프리카는 물론 동북아의 조선에까지 확산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감염된 사람만 약 5억명에 달했고 사망자는 5천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전해진다. 1차대전 당시 2천여만명의 군인과 1천여만명의 민간인이 죽은 것과 비교해도 엄청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총탄과 폭탄보다도 더 위력적이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으로 유명한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도 희생자였다. 당시 조선에서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전체 인구의 30%를 넘는 280만명에 달했고, 이 중 14만명이 죽었다는 기록(조선총독부 통계연감)도 있다. 이러한 팬데믹(Pandemic·대유행)을 이끈 주인공은 '스페인 독감'이었다. 조선에서는 서반아감기 또는 무오년 역병이라고 했다. 1차 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던 중립국 스페인이 이 집단감염병에 따른 사망 소식을 그대로 보도한 탓에 병명에 `스페인'이 들어갔다.

그로부터 102년이 지난 현재 지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에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신종코로나로 인한 중국 내 사망자만 490명에 이른다. 누적 확진자만도 2만4천명을 넘었다. 하루가 지나면 확진자가 3천명 넘게 늘고, 사망자도 수십명이 증가해 있다. 자고 일어나면 매일 수치가 최고치로 바뀌어 있다. 중국에 인접한 홍콩과 마카오, 대만에선 벌써 10여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다. 5일 현재 18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정부가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전방위로 뛰고 있지만, 추가 확산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다. 다만, 102년 전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스페인 독감이나 5년 전 대한민국 방역 시스템을 완전히 뚫었던 메르스 사태와 비교하면 상황이 매우 다르다는 평가도 있다. 감염병에 대응하는 정부의 대처나 국민들의 대응 방식 등이 많이 선진화된 이유도 있다. 메르스로 홍역을 치른 의료계도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국민 불안을 진정시키고, 정부 대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 16∼20일 정도가 고비가 될 것이란 얘기가 많다.

문제는 이 영향이 경제로 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신종코로나가 완전히 박멸된다고 하더라도 2020년 전 세계 경제는 엄청난 홍역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치명타를 입을 것이란 전망이 벌써 나온다. 우리 산업계는 이미 멈춰 섰다. 현대자동차는 국내 공장 가동을 모두 정지시켰다. 중국으로부터 부품을 받지 못하면서 차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일주일 정도 가동을 중단하면 현대차는 약 7천억원의 매출 손실을 볼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도 공장을 멈추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물론 LG화학, SK이노베이션, LS전선, 효성 등 현지 공장에선 제품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장마저 멈추게 된다면 그 피해는 실로 추산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수도 있다. 실적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항공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중국 노선 운항을 계속해서 중단하고 있다. 중국인들을 상대로 했던 면세점들은 올해 장사 다 했다는 얘기들을 하고 있을 정도다.

산업계가 이처럼 제품을 못 만들 상황이 되면서 결국 국가의 경제 총량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대기업 공장들이 멈추면 거기에 딸린 중소협력사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이는 고용에도 연쇄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대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업종이나, 중국을 생산기지로 두고 있는 업종이 입게 될 피해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가뜩이나 안 좋은 경제가 또다시 주저 앉을 수도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 비상대응을 주문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한가하게 이참에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자는 소리를 할 상황이 아니다. 경제 부처는 물론 외교 부처까지 총동원 돼 우리 기업들의 공장이 멈추지 않게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기업에만 대응책을 주문할 게 아니라 정부가 먼저 전시 상황에 준하는 플랜을 짜야 한다. 우리 몸속의 면역 체계가 과도하게 반응하는 '사이토카인 폭풍'은 죽음을 재촉한다. 하지만 정부의 과유불급(過猶不及) 대책 또한 경제를 죽게 한다. 지금은 미쳤다 싶을 정도의 과도한 대책들이 나와야 할 때다. 원인은 바이러스가 제공했지만, 그 결과는 경제에 고스란히 반영돼 나타날 것이다. 늦으면 후회한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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