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기생충 묻어가기
[데스크 칼럼]기생충 묻어가기
  • 고유권 기자
  • 승인 2020.02.1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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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 수상 흥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설마 하던 꿈이 현실이 돼서 그런가 보다. 요즘 누구를 만나도 꼭 한번은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 얘기를 하게 된다.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부터 샤론 최(최성재) 씨의 맛깔난 통역은 물론 영화 속에 등장한 짜파구리도 소재가 된다. 곽경택 감독을 오빠로, '은교'를 연출한 정지우 감독을 남편으로 둔 바른손 E&A의 곽신애 대표까지. 심지어는 기생충 스태프들이 모두 표준근로계약서를 쓰고 52시간제를 준수하면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미담까지 언급된다. 역시 '봉테일'이라는 찬사와 함께. 기생충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회자된다. 해도 해도 기쁘고 신기한 얘기들이다. 성공 스토리가 주는 짜릿한 카타르시스다. 감동이 목마른 시대에 살고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얘깃거리가 되는 인물이 또 한 명 있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탔을 때 무대에 올라 수상 소감을 한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무슨 자격으로 수상 소감을 한 것이냐는 비판론과 투자사를 대표해 축하를 나눈 게 도대체 왜 문제가 되느냐는 옹호론이 맞선다. 부정적인 측은 잔칫집에 갑자기 나타난 객(客)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는 불편한 시선으로 본다. 반대 측에선 기생충의 성공에 기여한 파트너로서 축제에 동참하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논란이라고 보면서도 한편으로 이해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대기업 총수 일가가 아니었다면 논란거리가 됐을까. 그렇다고 한들 왜 시빗거리가 될까 하는 생각이 자꾸 맴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 슈렉을 만든 미국의 드림웍스를 설립한 제프리 카젠버그는 "CJ와의 동업 관계가 없었으면 오늘날 드림웍스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2013년 한국 기자들을 만났을 때다. 그러면서 "미키 리(이미경 부회장)와 아주 좋은 관계를 가져왔다"며 이 부회장을 특별히 언급하기까지 했다. 제일제당 상무였던 이재현 CJ 회장과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이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은 1995년 3월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제프리 카젠버그, 데이비드 게펜 등 드림웍스 설립자들과 투자 계약을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이재현 회장은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격식 없는 모습으로 스필버그, 카젠버그 등과 '피자 협상'을 했다. 결국 CJ는 드림웍스에 3억달러를 투자한다. 당시 제일제당 연 매출의 20%에 달하는 큰돈이었다. CJ는 드림웍스가 만든 애니메이션의 아시아 지역 배급권을 확보했다. 설탕과 밀가루 사업을 하던 CJ가 문화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첫 장면이었다. 이미경 부회장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할아버지(고 이병철 삼성 회장)가 돌아가시고 우리가 독립했을 때 동생(이재현 회장)과 나는 회사를 정말로 확장하고 싶었다"면서 드림웍스 투자 결정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드림웍스 투자 이후 CJ는 본격적으로 문화사업을 확장해 왔다. 문화가 사업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CJ는 1998년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를 강변역에 열었고, 350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1997년 외환위기가 몰아닥쳐 국내 대기업들이 쓰러지는 가운데서도 CJ는 영화사업에 지속해 투자했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과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등 걸작들이 연이어 나온 것도 그런 투자가 뒷받침됐다. 오스카 4관왕의 주역인 봉준호 감독 역시 CJ와 이미경 부회장의 전폭적인 지원과 뒷받침으로 커 온 대표적 영화인이다.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마더'와 '설국열차' 그리고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봉준호 감독의 많은 작품이 CJ와 인연을 같이 해왔다.

우리나라에서 영화사업은 굉장한 모험 투자의 영역이다. 수익을 예측하기조차 쉽지 않으니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것 역시 힘들다. 100억원을 제작비로 투입했다고 치자. 손익분기점을 넘겨 발생한 수익이 20억원이라고 한다면 투자사와 배급사, 제작사가 챙기는 수익은 10억원 남짓이다. 영화발전기금(10%)과 부가세(3%)를 공제하고 극장이 절반의 수익을 챙긴다. 나머지 수익 10억원 중 투자자들이 가져가는 몫은 5억∼6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제작비가 올라갈수록 투자자들의 위험 부담은 그만큼 커진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게 전적으로 영화를 보러오는 관객 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영화 콘텐츠가 뛰어나고 천만 이상의 관객이 들어오고, 해외로 배급망을 넓힌다면 수익은 비례적으로 커진다. 부가적인 사업까지 성공한다면 큰 위험 부담에도 많은 수익을 노릴 수도 있다.

그래서 영화사업 투자에는 CJ와 같은 대형 앵커 투자자들의 몫이 크다. 다른 투자자들의 리스크를 줄이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CJ와 바른손 E&A가 주력 투자사로 참여한 기생충 제작에는 우정사업본부와 KDB산은캐피탈, 기업은행 IBK캐피탈, 하나금융투자, 유니온투자파트너스, 애큐온캐피탈, 효성캐피탈 등의 다수 투자자가 돈을 댔다. 성공을 위해 손을 잡은 동업자들이다. 모두가 고마운 존재들이자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이다. 모험 투자는 어느 금융 영역보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그 믿음이 오스카 4관왕이란 결과로 나타났다. 그런 모험 투자자들을 묻어가는 존재로 봐선 안된다. 문화사업에 대한 모험 투자는 계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문화사업이 10년 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중추 산업이 될 것이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pisces73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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