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원 기자 = 현대차그룹이 자동차 시장 본고장인 유럽의 심장부에 'HYUNDAI(현대)' 깃발을 꽂는다.

유럽 시장에서 완성차를 판매하는 것을 넘어서, 자동차금융과 모빌리티, 친환경차 등 현대차그룹이 지향하는 미래 목표와 방향을 충족할 수 있는 '빅딜'을 통해서다.

18일 재계와 금융권 등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금융계열사인 현대캐피탈을 앞세워 독일의 렌터카업체인 식스트(Sixt SE) 지분 28%를 인수한다.

향후 의무공개매수를 통해 소액주주 지분을 매입하고, 식스트 대주주 지분을 추가로 사들여 경영권까지 확보할 예정이다.

식스트는 자동차 시장 본고장인 독일에서 압도적 시장점유율을 보유한 1위 렌터카업체이며, 글로벌 4대 렌터카 기업 중 한 곳이다.

차량 대여 등의 렌터카 사업 뿐만 아니라 공유·호출 서비스 등 모빌리티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식스트를 인수하는 것도 이러한 사업 포트폴리오가 매력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동차금융을 기반으로 한 오토리스 부문의 해외사업 강화와 더불어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확장을 꾀하려는 중장기 비전, 목표와 맞닿아 있다고 본 것이다.

특히 전기·수소차를 중심으로 한 친환경차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유럽에서 현대차그룹의 위상과 주도권을 강하게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봤다.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조단위의 '깜짝' 대형 인수·합병(M&A)를 통해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유럽을 정조준하면서 미래 모빌리티 사업의 새 판 짜기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간 현대차그룹의 투자 성향을 고려하면 이번처럼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빅딜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현대차그룹에 입장에선 이번이 사실상 첫 해외 대형 M&A다.

현대차그룹은 그간 싱가포르 그랩과 인도 올라·레브, 미국 미고, 호주 카넥스트도어 등 모빌리티 분야와 크로아티아 리막과 독일 아이오니티, 영국 어라이벌 등 전기차 분야를 중심으로 소수지분 투자나 전략적 제휴를 진행해왔다.

폭넓은 투자에 나서왔지만, 최소한의 투자를 통해 일단 다양한 사업의 '물꼬'를 트는데 주력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또 미국 오로라 등 자율주행 기술 분야와 프랑스 에어리퀴드 등 수소차 기술 확보에도 투자를 병행하며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을 위한 기반도 다져왔다.

그러나 앱티브와 합작사(JV)를 설립한 이후 또 다시 조단위 자금을 동원해 식스트를 인수하면서 현대차그룹의 투자 기조도 점차 공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그룹이 중장기사업 전략인 '2025 전략'과 '플랜(Plan) S'를 통해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정체성을 바꾸려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강한 의지가 담겼다는 해석도 있다.

이번 식스트 인수는 향후 유럽 시장에서 펼칠 현대차그룹의 다양한 전략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식스트가 유럽 시장에서의 사업 확장을 모색하는 현대차그룹에겐 일종의 플랫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유럽 시장에서 자동차금융을 확대하려는 현대캐피탈은 식스트라는 확고한 사업처를 확보했다는 의미가 있고, 현대차와 기아차 입장에서는 알짜 공급처가 생겼다는 의미를 갖는다.

아울러 그간 현대차그룹이 준비해 온 미래 모빌리티 경쟁력의 성과를 즉각적으로 시험할 수 있는 일종의 '테스트베드'로 식스트가 활용될 가능성도 크다.

무엇보다도 현대차그룹은 식스트를 활용해 수소차와 전기차 등의 비중 확대를 도모하는 동시에, 현재 추진 중인 모빌리티 서비스와의 융합을 통해 유럽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것으로 점쳐진다.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렌터카업체 식스트는 최근 카셰어링과 카헤일링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하며 렌터카 사업과 정보통신(IT)의 결합을 추진하고 있다.

공유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 등의 연결 방안 등 최근 현대차그룹이 추진 중인 사업들에도 일찌감치 관심을 보여왔다.

아울러 110개 이상의 국가에 퍼져 있는 글로벌 네트위킹은 식스트가 가진 또 다른 자산으로 평가된다.

결국 현대차그룹은 엄격한 환경 규제와 공유 개념이 강한 유럽 자동차 시장을 선제적으로 공략해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모빌리티 트렌드를 선도하려고 한 셈이다.

여기에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아우디 등 쟁쟁한 경쟁자들이 즐비한 독일에서 '정공법'을 통해 경쟁하겠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은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에 참석해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한다는 목표의 핵심 동력은 우버와 같은 선도업체들과의 협업"이라며 "앞으로도 개방 혁신 정신을 토대로 다양한 분야의 최고 업체들과 파트너십을 맺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j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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