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윤시윤 강수지 기자 = "채권시장이 철이 없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2004년 10월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채권시장이 한은보다 정부의 비관적인 경기 진단을 근거로 금리 인하 베팅에 나선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시장이 계속해서 요동치자 다음 달인 2004년 11월 한은은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발발 이후 한은과 정부 간 시각차가 벌어지면서 2004년 '데자뷔'가 반복될지 주목된다.

◇정부와 한은 간 온도차…단서 찾는 시장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 14일 거시경제금융회의 이후 금리 인하 부작용을 언급하며 2월 기준금리 인하설을 일축했으나 시장은 다시 정부를 바라보고 있다.

전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타격을 우려하며 '비상경제시국'이라는 상황 인식을 갖고 엄중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비상한 상황에는 비상한 처방이 필요하다. 국민 안전과 민생 경제 두 영역 모두에서 선제적인 대응과 특단의 대응을 강구해 주기 바란다"며 "정부는 방역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코로나19가 주고 있는 경제적 타격에 그야말로 비상경제 시국이라는 상황 인식을 가지고 엄중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이 총재가 "최근 채권 시장을 중심으로 금리 인하 기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코로나19 사태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 확산할지, 지속 기간이 얼마일지 가늠하기 어려워 국내경제 영향을 판단하기에 이르다"고 말한 것과 다소 온도차가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에 전일 채권시장은 요동쳤고 달러-원 환율도 1,190원을 터치했다.

연합인포맥스 최종호가 수익률 종합(화면번호 4511)에 따르면 전일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4.9bp 내린 1.271%, 10년물은 6.2bp 하락한 1.560%에 마감했다.

이 총재가 금리 인하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 이전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일 달러-원 환율도 채권 강세의 영향을 받아 장중 1,190.2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날 달러-원 환율은 개장 초반부터 1,190원대에 안착하는 분위기다.

한 외환시장 참가자는 "달러-원 흐름은 애플 실적 전망 하향 조정 영향이 컸다"며 "특히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경제적 충격이 일시적 쇼크라고 생각한 측면이 컸으나 기업 실적, 특히 실물 경제 쪽 여파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총재의 톤 자체는 다른 중앙은행과 금융시장에서 나오는 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며 "경제 여건 상 사스나 메르스 사태 당시와는 다르다는 팩트 자체 관점에서 이해하면 정부 쪽 발언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전일 문 대통령 발언과 대비되면서 더 부각된 점이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엇갈리는 전망…요동치는 채권, 둔감한 환시

시장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2월 금리 인하에 대한 전망이 극명히 엇갈리면서 당분간 자산 시장간 균열은 계속될 전망이다.

채권 시장이 크게 움직이고 주식 시장이 재료 반영이 빠른 데 비해 외환시장은 금리 이슈에 비교적 둔감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정부의 금리 인하 압력에 다시 무게를 싣는 모양새다.

A외국계은행 외환딜러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금리 시장이 제일 민감히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고 악재든 호재든 주식이 빨리 반영하고 있으나 환시는 둔감했다"며 "경기 부양책 때문에 달러-위안(CNH) 환율이 조금씩 오르면 달러-원도 비슷한 이유로 따라갈 것으로 보이고 다시 절반 이상의 확률로 2월 인하에 다시 힘이 실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 대통령이 비상경제시국이라는 단어까지 쓰면서 강하게 발언했는데 강력한 수위의 금리 인하 주문으로 보인다"며 "2영업일만에 채권 시장이 시소처럼 왔다 갔다 했는데 시장 참가자들의 이 총재 발언에 대한 평가가 중요해 보이고 다시 금리 인하에 대한 단서를 찾아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B외국계은행 외환딜러는 "문 대통령이 금리 인하를 주문한 것으로 보여 2월 금리 인하 가능성은 다시 박빙"이라며 "총재, 부총재, 이일형 금통위원 세 명이 매파로 보이고 조동철, 신인석 위원은 그대로 금리 인하를 주장할 것이기 때문에 임지원, 고승범 위원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 딜러는 "임 위원은 실물 경제를 중시해서 금리 인하를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며 "금통위 내부에서 금리 인하와 동결이 4대 3이라면 시장은 정부 쪽 시각에 기대를 거는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오는 27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이 총재가 발언을 바꾸기에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소수의견 2명에 4월 금리 인하 신호를 강하게 주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C증권사의 채권 딜러는 "불과 지난주에 이 총재가 금리 인하 부작용을 언급했는데, 다음주에 금리를 인하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소수의견 2명에 4월 인하 신호를 강하게 주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주 총재가 그렇게 발언을 세게 할 필요는 없었는데 대통령도 강하게 발언하면서 입장만 복잡하게 됐다"며 "총재 입장에서는 시장 주도권을 잃게 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D시중은행의 외환딜러도 "이번 정권이 부동산 대책에 집중하는 만큼 지금 부동산 대책을 내놓는 와중에 섣불리 금리 인하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금리 인하를 해도 유동성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 효과도 없어 보여 총재 말대로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전했다.

syyoon@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2시간 더 빠른 09시 41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