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선 77세의 마이클 블룸버그는 39세의 나이에 투자은행에서 쫓겨난 것을 일생일대의 기회로 잡은 전형적 자수성가형 억만장자다.

20일(현지시간)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전 뉴욕 시장인 블룸버그는 1942년 보스턴 인근 메드퍼드라는 도시에서 폴란드 이민자 출신의 회계사 아버지와 비서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으며 1966년 하버드대학에서 MBA를 딴 후 뉴욕에 소재한 투자은행 살로몬 브라더스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첫 업무는 은행 금고에 있는 주식과 채권 등 증권을 세고 관리하는 일이었다. 뛰어난 업무 수행으로 그는 1972년 서른살에 파트너로 승진했다.

이후 1978년에 회사 내 IT 부서로 이동했지만, 투자은행 파트너에게 이것은 일종의 좌천이었다.

1981년 살로몬이 원자재 트레이딩 업체 피브로라는 회사에 합병되면서 블룸버그는 39살의 나이에 15년간 일한 회사에서 해고됐다.

그는 해고된 해에 살로몬에서 받은 400만달러가량의 퇴직금으로 블룸버그 LP를 공동 창업했으며 IT 부서에서 배운 컴퓨터가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트레이더들에게 신뢰할만한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이를 제공할 틈새시장으로 데이터 업체를 구상한 것이다.

블룸버그 단말기는 초창기에 '마켓 마스터 터미널'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첫 고객은 메릴린치였다. 메릴린치는 마켓 마스터에 3천만달러를 투자했으며 자사 고객들에게 1984년부터 독점적으로 마켓 마스터 단말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이후 사명을 블룸버그 LP로 변경했고, 1986년 5천 대였던 단말기는 2015년에 32만5천대를 넘어섰다.

구독료는 연간 2만4천달러, 2년 이상 구독할 경우 연 2만달러에 달하지만, 금융 데이터의 중요성을 절감한 투자자들은 앞다퉈 블룸버그 단말기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블룸버그는 단말기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1990년 50명가량의 기자를 둔 블룸버그 뉴스를 론칭했다. 이후 4년 뒤에 블룸버그 TV를 설립해 방송 부문까지 확장했다.

블룸버그 LP는 결국 인간 블룸버그를 억만장자로 만들어줬고, 전 세계 120개국에 직원 2만명을 둔 거대 금융 데이터업체로 성장했다.

2019년 11월 기준 그의 순자산은 618억달러로 늘어났고 그는 세계에서 12번째로 자산이 많은 억만장자에 이름을 올렸다.

블룸버그는 단말기를 통해 금융시장을 제패했지만, 그의 욕망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블룸버그는 정치로 눈을 돌렸고 2002년부터 2013년까지 뉴욕시장을 지냈다. 시장으로 복무하는 동안 그의 연간 보수는 1달러에 그쳤다.

블룸버그는 줄곧 민주당원이었으나 2001년 공화당으로 당적으로 바꿔 뉴욕시장으로 당선됐다. 뉴욕시장 재임 시절이던 2007년 탈당해 무소속을 유지했으며 이는 당시 2008년 대선을 노린 것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했다.

그는 결국 2018년 17년 만에 민주당원으로 재가입해 차기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후보로 도전장을 내밀기 위한 포석을 마련했다.

막대한 자금력을 등에 업고 중도 대안 후보로 급부상한 블룸버그는 오는 3월 슈퍼화요일을 계기로 민주당 경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예정이다.

하지만 과거 여성 혐오, 성희롱 등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의혹 등을 극복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맞수가 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 1998년 당시 모습 : 출처 비즈니스인사이더>



ys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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