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또 금융시장과 한국은행의 동상이몽(同床異夢)으로 끝날까. 시장은 한은이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 행보를 긴밀하게 따라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한은은 이번에도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양 중앙은행의 정책 여력에 큰 차이가 있고, 금리 인하에 따른 기대효과도 제각각인 이유가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은의 기본 스탠스는 연준을 비롯한 글로벌 중앙은행의 정책 방향에 공조는 하지만, 금리 인하 시기는 치열하게 고민해서 결정하겠다는 쪽으로 읽힌다.

지난 4일(한국시간) 미 연준의 기준금리 50bp 인하는 그야말로 기습적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결과에 한은도 긴박하게 움직였다. 당일 오전 부총재 주재로 통화금융대책반 회의를 가진 데 이어 다시 이주열 총재 주재의 긴급 간부회의도 열렸다. 회의 이후 이 총재의 메시지 공개가 예고됐던 터라 시장의 관심이 집중됐다. 총재의 메시지 공개 시간이 오전을 지나 장 마감 이후로 늦춰지면서 시장의 기대는 고조됐다. 연준과 유사하게 금통위 정례회의 전 임시회의 개최 가능성까지 제기됐지만, 이 총재 메시지에 이런 파격은 없었다. "통화정책을 운영함에 있어 정책 여건 변화를 적절히 감안할 필요가 있겠다"는 발언 등을 통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은 열어뒀다.

채권 금리는 큰 폭의 하락세다. 국고채 주요 구간이 기준금리를 밑도는 것은 물론 3년물 금리는 지난 9일 한때 1.0%를 깨고 내려가기도 했다. 미 국채 금리 등 글로벌 금리 급락에 연동하는 부분이 크지만, 연준의 과감한 금리 인하를 한은도 따라가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하다. 시장의 압박에도 한은은 제 갈 길을 가겠다는 분위기다. 일부에서 기대하듯 임시 금통위를 통해 기준금리를 내리는 카드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본적으로 연준과 한은의 정책 여력 간극이 크다. 연준의 이번 긴급 금리인하는 경제 성장세 약화에 대비한 '보험성 금리 인하'로 평가된다. 2017년과 2018년 금리를 충분히 올려놨으니 가능한 조치이기도 하다.

지난해 하반기 연준이 세 차례 보험성으로 기준금리를 내리는 동안 한은이 두 차례 인하에 그친 것도 금리 여력 차이가 작용한 측면이 있다. 이번에도 연준이 50bp를 한 번에 내린 것처럼 한은도 따라가야 한다는 논리는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무리한 압박일 수 있다.

연준과 달리 보험성 인하가 어려운 한은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이 가늠된 이후에 대응하려 할 공산이 크다. 지금은 우리 경제 성장률 2.0% 안팎 달성 여부에 경제주체와 시장의 관심이 쏠려 있지만, 코로나19 사태 전개에 따라 더 악화할 시나리오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정책 여력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금리인하 카드에 유독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효과를 보기에 만만치 않은 환경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모든 경제주체의 손발이 꽁꽁 묶여 있는 상황이라 지금은 금리가 내려갔다고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다. 소비 촉진과 투자 확대라는 금리 인하에 따른 기대 효과는 코로나 위험이 어느 정도 걷힌 상황에서 좀 더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재정과 한은의 금융중개지원대출 등을 통해 일시적으로 자금 융통이 어려운 기업과 현장 등에 자금이 곧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당장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패닉 양상이 금리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심리 안정 효과 외에는 큰 기대를 걸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역시 결정적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부장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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