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독감보다도 못하다고 폄훼하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다급해졌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Pandemic·대유행) 선언 이후 돌변했다. 공포의 확산과 금융시장의 붕괴가 그를 다시 백악관 브리핑룸으로 불러냈다. 그는 코로나19를 '보이지 않는 적'이라고 규정했다. 현 상황을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라고 선언했다. 1천200조원이 넘는 유동성을 풀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국민에게 1천달러(약 120만원)의 현금을 살포할 준비가 돼 있다고도 했다. 극약 처방이다. 하지만 시장의 패닉은 계속된다. 제로금리 승부수를 던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머쓱해졌다.


하나의 유럽을 외치며 국경의 빗장도 풀었던 솅겐조약조차도 무의미해졌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국경을 닫고 있다. 유럽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8만8천명(18일 기준)을 넘어섰다.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을 추월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독일은 1만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로 세상을 등진 유럽인은 벌써 4천100명을 넘는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도전에 직면했다"고 했다. 영국과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앞다퉈 수백조원의 돈을 풀겠다고 한다. 폴란드와 터키, 체코 조차도 20조∼65조원 규모의 부양책을 내놨다.

참 묘하게 돌아간다. 국가의 개입을 지극히 꺼리는 미국까지 나서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한다. 이처럼 신속하게 주요국들이 대규모로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며 발 벗고 나선 것도 이례적이다. 물론 그 실마리는 금융시장의 붕괴가 제공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공포가 도사린다. 금융시장의 붕괴는 그런 공포를 수치로 나타내주는 시그널일 뿐이다. 그 시그널은 일상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반영한다. 개인과 기업, 국가 등 한 나라의 경제를 주도하는 모든 주체가 갖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그래서 '코로나19 전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분명히 다르다. 금융시장에 유동성만 공급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개인과 기업, 국가의 '펀더멘털'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걱정부터 해야 한다.

끔찍하지만 코로나19 전쟁의 결말이 대규모 실업 사태로 귀착될 가능성이 크다는 걱정을 하게 된다. 코로나19로 초래된 각국의 대문 걸어 잠그기는 그 단초다. 경제적 부가가치는 교역을 통해 만들어진다. 세계 공급망의 큰 축을 차지하는 한국에 교역은 핏줄과 같다. 하지만 피가 통하지 않는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다. 코로나19로 초래된 상황은 미중 무역분쟁 때와는 비교할 수 없다. 물건을 만들어도 팔 곳이 없다면. 기업들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상황일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연일 '패닉 셀'에 나서는 외국인들은 뭘 봤을까. 탄탄하다고 믿었던 한국 기업들의 불안한 미래를 본 것은 아닐까. 우리 기업들은 아직은 버틸 체력이 있다. 쓸모없는 곳에 돈을 퍼붓다 재무적으로 부실화한 기업도 그리 많지 않다. 여전히 펀더멘털 자체는 매우 좋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노(No)'다. 기업이 무너진다면 그다음 스텝은 무엇일까. 고용불안이다.

우리 정부가 내놓는 대책들을 보면 여전히 답답하다. 찔끔 대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늘길이 닫혀 계류장에 비싼 비행기를 세워둔 항공사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간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고작 착륙료를 감면해주고 항공기 정류료를 면제해주는 등의 조치가 전부다. 긴급 운영자금을 지원해달라고 아우성쳐도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리만 한다. 미국은 항공산업 지원에만 1조원을 퍼붓는다. 이탈리아에선 아예 항공사를 국유화한 경우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항공사처럼 어려움을 겪는 기업과 산업들이 부지기수로 쏟아질 것이다. 그때도 이런 식으로 대응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먹먹해진다.

금융당국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 머리를 맞대 모든 기업과 산업을 대상으로 신용위험분석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산업별로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스트레스 테스트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결과물을 빨리 만들어내 어디에 얼마만큼을 지원하고, 재원과 방식은 어떻게 할 것인지 대안을 내놔야 하지 않나. 코로나19가 초래할 기업들의 크레디트 리스크를 너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업들이 발행하는 회사채와 기업어음(CP)까지 사주기 위한 유동성 공급 계획까지 마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국책은행은 항공사에 고작 긴급자금 400억원만 지원했다.

금융당국이 기업들의 신용위험을 상시로 체크해야 하는 이유는 금융시장 붕괴를 사전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다. 기업 부실이 금융 시스템으로 전이되기 이전에 징후를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하고 실행을 해야 하는 것은 금융당국의 몫이다. 금융당국은 지금 그것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전의 방식과는 달랐으면 한다. 구조조정을 동반해 무차별적으로 걸러내는 것이 아닌 펀더멘털을 지켜주기 위한 방식이어야 한다. 코로나19 전쟁이 끝난 뒤에도 기업이 정상적으로 '원대복귀'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외부 충격에 버틸 수 있으면서도 정상적으로 체력을 만들 수 있는 '코호트 격리'식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펀더멘털은 괜찮은데 장사를 못 해 망하는 흑자 부도는 막아야 하지 않나.

국책은행은 물론 공적 보증기관들에 정부가 대규모 증자를 해줬으면 한다. 수조 원이면 더 좋다. 그 돈을 종잣돈으로 하면 수십조원의 대출과 보증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창출되는 돈을 기업들이 필요한 자금으로 대주자.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각서를 내는 기업에는 더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공급해 주자. 펀더멘털이 무너지기 전에 영양제를 공급해야 한다. 그래야 대규모 실업을 막을 수 있다. 싸구려 일자리 만들려고 수십조원의 예산을 퍼붓는 일을 반복하지 말았으면 한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pisces738@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0시 22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