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둔화 대응과 관련해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예외적인 시기에 대범한 행동이 필요하다(Extraordinary times require extraordinary action)"는 트윗을 날렸다. 동시에 그리스 국채를 포함한 7천500억유로(약 1천37조원)의 채권매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이는 며칠 전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기존 매입 규모에 1천200억유로를 더하겠다고 발표한 후 나온 추가 조치다. 미국 정부도 도산 위기에 놓인 항공, 호텔 관련 기업을 대상으로 지분인수까지 고려한 구제금융(bailout)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온다. 또 미 정부는 자국민 개개인에 2천달러(250만원)씩 주는 방안도 추진한다.



간밤에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한국을 포함한 9개 중앙은행과 통화스와프를 확대한 것은 다행이지만 지금까지 나온 우리 당국의 안정책은 예상 수준이거나 시점이 아쉽다는 시장의 지적이 많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50bp 긴급 인하하고 국고채를 1조5천억 정도만 매입한 것이나,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채권과 증권시장 안정 펀드 조성 계획을 다음 주 내놓겠다고 공언한 것 모두가 과거 봤던 수준이라고 시장참가자들은 전한다. 안일하다는 박한 평가도 나온다. 이렇다 보니 약효가 별로인 것 같다. 원화, 주가, 채권 값이 모두 흘러내리면서 '트리플 약세' 현상이 잘 잡히지 않았다. 외국인 주식 매도세가 커지면서 환율은 하루 40원 뛰었고, 안전자산인 국채 금리도 크게 올랐다. 이는 이자 주는 채권보다 보유 혜택이 없는 현금을 선호한다는 심리다. 며칠 금융시장을 문 닫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현재 금융시장 공포의 근원은 밖에 있으니 각종 시장 대책이 효과를 발휘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정부재정과 공공보건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받는 미국과 유럽의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세가 둔화하는 변곡점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선결 조건이기 때문이다. 또 경기 침체 우려를 반영한 국제유가가 회복되는 것도 관건이다. 유가 폭락으로 자금 조달이 취약해진 미국 셰일업체를 포함한 기업들의 신용경색이 심해진다면 큰일이다. 지금 금융시장의 극단적인 반응은 이런 가장 나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행동들이다. 오크트리 캐피탈의 하워드 막스는 이렇기 때문에 지금 시장의 우려를 '비이성적'인 패닉 상황으로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다분히 이성적인 반응으로 보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풀이다.



금융시장을 폐쇄하지 못한다면 지금은 시간을 버는 것이 필요하다. 일단 해외 코로나 확진자 급증세가 둔화하는 시점까지 말이다. 어떤 성격의 정책을 내놔야 할지는 이미 제시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통상적 상황이 아닌 만큼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신속하게 결정하고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라가르드 총재도 대범한 조치의 필요성을 말하는 말미에 모든 잠재수단을 쓰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내가 지킨다'라는 당국 의지의 표현이다. 이럴 때일수록 당국이 자신 있는 모습을 피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시장의 아픈 곳을 바로 짚어주는 접근법도 필요하다. 그러려면 당국은 '이 정도면 되겠지', '과거에 이 정도 했으니까'하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시민들은 방역 당국이 밤낮으로 최선을 다해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모습을 봐왔고, 이제 신뢰를 보낸다. 금융시장도 당국을 믿게 만들어야 한다. 믿어보겠다. (자산운용부장 이종혁) liber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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