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안펀드·증안펀드에 5대 금융지주 兆단위 출자

은행권 "위험가중치 이외 대출규제 완화도 필요"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5대 금융지주 중심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 '자율'이라 이름 붙였지만, 은행의 공공성을 이유로 희생을 강요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부담만큼 수혜를 보는 측면도 있다는 입장이다.

24일 정부가 마련한 100조원 규모의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 중 금융시장에 투입되는 유동성은 42조원 정도다.

이 중 5대 금융지주가 참여하는 채권시장안정펀드(이하 채안펀드)는 20조, 증권시장안정펀드(이하 증안펀드)는 10조7천억원 규모로 조성된다.

◇ '시스템적 중요은행' 5대 금융지주, 2~4조 출자 불가피

현재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은행계열 금융지주는 채안펀드와 증안펀드에 각각 1조원씩, 총 2조원의 출자를 약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금융지주는 은행과 금투, 생명, 카드 등 자회사를 활용해 채안펀드와 증안펀드 참여할 방침이다. 은행의 경우 금투나 생명에 비해 감내할 수 있는 리스크가 적은 만큼 주로 채안펀드 중심으로 투자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지주 사이에서는 향후 시장 상황에 따라 추가 출자를 약속한 만큼 그룹별로 최대 4조원까지 출자 규모가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은행이 자금을 빌려주는 형식이지만, 비용은 물론 큰 부담이 수반된다.

금융위는 올해 시스템적 중요 은행(D-SIB)으로 5대 금융지주와 이들 은행지주 자회사인 은행을 선정했다. 바젤위원회(BCBS)는 국가별 D-SIB에 추가자본 적립을 권고하고 있다. 그만큼 국내 금융시스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란 뜻이다.

수십조원의 시장 유동성 패키지를 마련하는데 5대 금융지주의 협력을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금융권의 희생을 강요한 정부의 정책이 또 다른 리스크를 키우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물론 현시점에서 이들 금융지주의 자본 건전성은 나무랄 데가 없다.

KB금융지주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13.6%, 하나금융지주와 신한지주는 각각 12.0%와 11.2%로 경기대응완충자본(CCyB3)을 포함한 규제 최대치인 10.5%를 1%포인트 안팎으로 웃돌고 있다. BIS비율 역시 2008년 금융위기와 비교하면 평균 200~370bp 이상 개선된 상태다.

하지만 앞으로 가계와 기업의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대한 대손비용의 추정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은행권 역시 상시 유동성과 자본 건전성의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부담은 꽤 크다.

금융시장 변동성 탓에 금융그룹의 고유자산 투자 손실이 커졌고, 달러-원 환율 급등에 따른 대내외 금융 시스템 불안에 대한 우려가 지속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미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이들의 순이자마진(NIM)과 투자수익률 하락에 따른 이익 창출 능력이 크게 훼손된 상태다.

금융당국 역시 이같은 우려를 인지하고 있다.

이세훈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통상 금융사 자본건전성은 후행적으로 나타난다. 시장 충격, 기업 부실, 그리고 금융사 순"이라며 "지표상으로 아직은 반영되지 않았지만 이 상황이 오래가면 분명 금융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 은성수 "금융지주, 부담자이자 수혜자"…은행권 "추가 규제 완화 절실"

금융당국 역시 이러한 우려를 인지하고 있다. 다만, 선제적인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채안펀드와 증안펀드에 참여하는 금융회사가 출자한 만큼 수혜도 입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은 위원장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브리핑에서 "은행권에 부담을 줬지만 그만큼 수혜자가 될 수 있다"며 "만약 채안펀드가 안되면 은행에 돈을 달라고 (기업들이) 올 텐데 채안펀드가 은행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증안펀드에 출자하는 지주사도 마찬가지"라며 "지주사도 자기네 주식을 가지고 있는데 주가가 떨어지면 손실이다. 이를 공동으로 막아주면 부담자이자 수혜자가 되는 셈이라 다 같이 협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 위원장은 이번 패키지에 조단위 출자를 결정한 금융지주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약속했다.

우선 은행 등 금융지주사의 유가증권 투자에 대한 위험가중치를 절반 수준으로 낮춰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건전성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해 부담을 줄이겠다는 뜻이다.

은행이 기업대출을 확대할 수 있도록 바젤Ⅲ 규제를 7월보다 일찍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는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가 100%에서 85%로 낮아지고, 기업 대출 중 무담보대출과 부동산담보대출의 부도시 손실률(LGD)을 하향 조정한 게 골자다.

이와 함께 은행권에서는 신(新) 예대율 산정 과정에서 소호대출에 대한 가중치도 낮춰달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예대율 산정 과정에서 가계 대출은 +15%, 기업대출은 -15%의 가중치가 붙는다. 소호대출은 가중치가 없다. 소호대출을 큰 개념에서 중소기업 대출로 봐달라는 뜻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민생금융정책 공급량이 늘어나며 모든 산업군을 지원했듯이 가계와 기업, 소호 모두 어려워졌다. 특히 은행이 취급하는 소호의 경우 중소기업 수준까지 대출 가중치를 낮추면 자영업자의 자금중개는 물론 은행의 이익버퍼도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부담 최소화를 위한 정책적인 지원을 약속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확산으로 이미 비상경영에 돌입한 금융지주사들의 걱정은 더 커졌다.

한 금융지주 임원은 "국가재난 상황에 5대 금융지주가 힘을 보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기본 역할인 자금중개를 비롯해 각종 사회적 도움까지 전방위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채안펀드나 증안펀드의 약정 규모가 예상보다 큰 것은 사실"이라며 "앞으로 이런 상황이 장기화할 것을 고려하면 금융회사에만 희생을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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