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최근 해외에서 쏟아지는 경제 뉴스를 보노라면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 현상과 맞물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내놓은 조치들은 사뭇 놀라울 정도다. 3월 초에 기준금리를 50bp 인하한 데 이어 보름도 안 돼서 한꺼번에 100bp를 인하했다. 그것도 모자라 '무제한 양적완화(QE)'를 포함한 대규모 유동성 공급방안까지 내놨다. 여기에는 중앙은행인 연준이 회사채시장에서 직접 회사채를 매입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런 전례 없이 빠른 조치들은 연준의 절박함을 반증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에 뉴욕금융시장이 맥없이 무너지면서 대공황이 그림자까지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만선까지 위협했던 다우지수가 한 달 만에 1만8천선 근처로 주저앉은 데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미국 국채금리가 상승하고 극심한 안전자산 선호현상으로 미국 회사채시장과 단기자금시장은 신용경색에 허덕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금융시장도 만만치 않다. 지난달 2천250선에서 거래됐던 코스피지수가 한때 1천400선 근처까지 곤두박질했다. 달러-원 환율이 치솟는 가운데 달러를 제대로 구하지 못해 외화자금시장도 흔들리고 있다. 자금시장에서 기업어음(CP) 발행이 힘들어지자 증권사들과 일부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는 실물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몰고 왔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각국이 국경을 통제하면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공장들도 하나둘 멈춰서고 있다. 중소기업은 물론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들도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했다. 다수 기업이 공장을 폐쇄하는가 하면 직원들에게 임금반납, 희망퇴직, 무급휴직을 요구하고 있다. 바야흐로 위기에서 살아나기 위해 상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는 모양새다.

급기야 한국 정부와 정책당국의 발걸음도 한층 빨라지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아니다. 실효성이 있는 방안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쓸 수 있는 모든 자원과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며 "비상한 대응에는 특히 타이밍이 중요하므로 과감하게 결단하고 신속하게 집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책당국의 대응을 보면 아쉬움이 적지 않다. 최근 재정 및 통화당국이 마련한 대응들도 사실 새로운 게 없다. 앞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내놓은 대책들을 소환한 정도다. 규모와 시기를 놓고 논란이 많은 기획재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그렇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그렇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나 채권시장안정펀드, 증권시장안정펀드, 환매조건부채권 대상기관 확대 등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촉발된 금융과 실물 부문의 위기가 과거보다 심각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도, 내놓은 대책들은 과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장 참가자들이 하루하루 생명을 건 외줄 타기를 하는데, 지난주부터 제기됐던 채권시장안정펀드는 다음 달에야 실제로 채권을 매수할 수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오죽하면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유동성과 관련한 문제의식이 안일하다"고 지적했을까 싶다. 각종 유동성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지금의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예전보다 정책 강도를 훨씬 강하게 하거나, 아니면 보다 빨리 정책을 실행하는 수밖에 없다. 시장을 뒤따라가기만 해서도 절대 시장을 안정시킬 수 없다. (정책금융부장 황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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