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銀, 비용 누수 막고자 무디스만 사용

은행권 "부정적 시그널 감지…국내은행 평가 악화"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우리은행이 글로벌 자금시장에서 수시로 기업어음(CP)을 발행하고자 획득한 신용등급을 반납했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5일 우리은행이 운용하는 20억달러 규모 유로 CP 발행 프로그램에 부여한 A1의 단기 신용등급을 철회했다.

기업 신용등급 철회는 대상 회사가 요청하면 이뤄진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5월 S&P 측에 이러한 뜻을 전달했다.

그간 국내 은행은 미국을 제외한 자본시장에서 수시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고자 CP나 양도성예금증서(CD) 등을 발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축해왔다. 외화 조달 기반을 폭넓게 운용하기 위해서다.

시장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통상 CP 발행 프로그램을 구축하면 해당 시장에서 0.20%포인트(P) 안팎으로 발행 금리가 낮아진다. 투자자와 물리적으로 가까워 발행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우리은행은 이 프로그램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인 2007년에 신설했다. 당시 S&P로부터 획득한 신용등급은 A2였지만 2014년 연례협의를 거쳐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그 사이 우리은행은 무디스로부터도 신용등급을 획득했다. CP 발행에 영향을 주는 단기 신용등급은 P1, 중장기는 A1이다.

무디스로부터 높은 등급을 획득한 우리은행은 S&P의 신용등급을 반납키로 했다. 국제신용등급을 유지하기 위해선 연간 꽤 많은 인적·물적 비용이 소요된다.

하지만 비용만의 이유로 등급을 반납했다는 데 은행권은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국제신용등급은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일종의 체력평가로, 투자자들은 복수의 등급을 보유한 발행 주체를 선호한다.

물론 하나의 등급만으로도 외화 CP를 발행하는 데 문제는 없다. 우리은행은 내부적으로도 외화자금 조달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그만큼 우리은행이 해외 자금조달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당분간 유로 CP를 통한 차입 계획이 없어 철회했겠지만, 시장 상황을 그만큼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우리은행은 CP 발행 잔액은 평균적으로 '0'에 가까웠다. CD나 사모사채 등 발행 수단이 많아서다.

하지만 외화 유동성 관리에 집중하고 있는 최근 은행의 사정을 고려하면 이러한 행보는 시장에서 부정적으로 읽히기 충분하다.

국내 기업의 경우 글로벌 신평사가 부여한 신용등급을 철회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신용등급 강등 우려라는 악재를 해소하기 위한 선제적인 조치였다.

이미 글로벌 신평사 사이에선 국내 은행에 대한 신용등급 강등을 검토하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현재 무디스는 기업은행을 비롯해 부산·대구·제주·경남은행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검토 중이다.

국내 은행은 이번에 정부가 마련한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과 관련해 대규모 출자가 불가피하다. 여기에 금리 인하에 따른 순이자마진(NIM) 하락, 가계와 기업 관련 여신 비용이 늘며 수익성과 자본 건전성이 악화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하며 외화 유동성 보강이 시급하지만, 시장금리나 투자자 확보에서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며 "대형 시중은행 역시 안전지대라고는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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