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금융시장에 불어닥친 현재의 위기는 지난 2008년의 금융위기와 여러모로 닮은 꼴이다. 전세계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이 동반 붕괴되는 상황에서 나오는 주요국의 정책 수단도 그때와 판박이다. 금융위기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는 이유다.

우리나라만 보면 금융위기 당시와 눈에 띄게 달라진 게 있다. 신용파생상품이라 불리는 복잡한 구조화상품에 대한 투자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주가 폭락으로 불거진 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 사태는 커다란 걱정거리다. 여기에서 파생한 단기금융시장의 경색은 금융회사들의 유동성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신용파생상품 관련 익스포저가 얼마인지조차 파악이 어려웠던 금융위기 당시와 비교할 바는 못 된다는 평가가 많다. 눈에 보이는 위험과 보이지 않는 위험의 차이일까.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연쇄 파산을 불러온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연계채권(CLN) 등 구조화상품에 대한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신용위기나 다름없다. 표면적인 주범은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서브프라임 모기지'였다. 그렇지만 실제 주범은 월가의 금융공학으로 탄생한 첨단 신용파생상품이었다. 대표 상품 CDO는 우량채권과 비우량채권을 뒤섞어 유동화했다. 서브프라임의 잠재적 리스크는 분산된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부도를 대비한 보험인 신용부도스와프(CDS)라는 파생상품까지 곁들여졌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높은 신용등급을 매겼다. 투자은행은 안전자산으로 둔갑한 이 상품을 팔아 막대한 수익을 남겼다.

우리나라 금융회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해외투자 열기에 글로벌 IB의 영업력이 가세하며 국내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들의 투자가 이어졌다. 부동산 호황기에 날개 돋친 듯 팔렸던 이들 파생상품은 미국 부동산시장이 침체기로 접어들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서브프라임 연체율이 치솟았고, 정체를 숨기고 있던 신용파생상품의 막대한 부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과도한 레버리지로 전체 잔액이나 손실액은 가늠조차 안 됐다. 공포는 미국의 투자은행을 먼저 덮쳤다.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러더스가 차례로 파산했다. 이들이 판 파생상품의 익스포저가 전 세계 금융시스템을 뒤흔들었다. 국내 금융사들도 대규모 손실 공포에 휩싸였다. 일부 증권사는 관련 손실을 덜어내느라 3~4년 간 적자가 불가피했다. 미국 금융시스템이 붕괴 직전에 갔던 위기였고, 그 파장은 국내 금융사와 시스템 전반에도 커다란 생채기를 냈다.

다행히 신용파생상품 잔액은 전 세계적으로 급감 추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세계 신용파생상품 잔액은 8조4천억달러로 3년 전인 2016년 6월 대비 30% 감소했다. 2010년 6월(31조4천억달러) 대비로는 80% 가까이 급감했다. 우리나라 신용파생상품 잔액 감소 추세는 더 두드러진다. 2010년 6월 기준 19억3천만달러였던 신용파생상품 잔액은 지난해 6월 제로(0)로 집계됐다.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월가에서 기업대출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대출채권담보증권(CLO)이 2015년을 전후로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CLO 발행 규모가 금융위기 직전의 CDO 규모보다 훨씬 많다는 집계도 있어 우려를 더 한다. 다만 과거 서브프라임과 비교해 기업대출의 부실 정도가 심하지 않아 유동성 리스크를 자극할 가능성이 작다는 의견도 대립한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장기화하는지 여부가 관건이 될 수 있다. 금융당국의 밀착 감시가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금융위기 공포는 진행형이다. 지금의 위기가 금융위기 이상이 되지 않을 것이란 보장도 없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우리나라 정부와 당국은 이미 금융위기 이상에 대비한 대책을 발 빠르게 내놓고 있다. 통화스와프 등 글로벌 공조도 본격화하고 있다. 금융위기의 악몽이 학습 효과로 남는 순간이다. 금융위기 이후 강력한 금융 규제 덕분에 보이지 않는 위험도 그때보다는 덜할 것이란 기대도 있다. 근거 없는 위기설은 진짜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 위기에 대비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과도한 공포 심리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 (금융시장부장 한창헌)

chhan@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0시 56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