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전소영 기자 = 한은맨이 일을 냈다. 기준금리가 0%대까지 낮아지면서 통화정책 외에 한국은행이 할 수 있는 일과 그 테두리를 법에서 찾는 시기에 현직 한은맨이 한은법을 통해 보는 한은의 역할을 들고나왔다.

한은에서 35년째 근무 중인 차현진 인재개발원 교수는 한은법 조항 하나하나가 만들어진 배경과 현재 적용되는 범위, 그리고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을 수정하라는 제언까지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9일 도서출판 율곡출판사에서 출판한 '법으로 본 한국은행'은 한은법의 태동과 역사, 현재 적용되는 한은법의 모순과 개선 방안을 조목조목 풀어냈다.

저자는 2007년 '에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을 시작으로 '중앙은행 별곡' 등 통화정책과 중앙은행의 역사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뤘다. 이 책은 저자가 연구한 중앙은행론의 완결편이다.

저자는 한은법을 통해 한은의 목적과 행동을 되짚는 것부터 시작한다.

가령 한은법 제1조에 나오는 물가 안정과 금융안정의 관계에 있어, 물가 안정을 '도모'하고 금융안정은 '유의'한다고 명시한 이유에 관해 설명한다. 저자는 한은법에 금융안정을 추가할 당시 이를 제안한 당사자다. 그는 일차적으로 물가 안정을 도모하고 이어서 금융안정을 도모한다는 의도가 담겼다고 설명한다.

최근 논란이 되는 한은법 제80조 영리기업에 대한 여신 조항도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금융기관의 유동성 우려가 확대되자 한은은 제80조에 기반한 증권사 대출을 검토하고 있다. 제80조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법 제13조와 그 궤를 같이한다.

그는 제80조가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라며, 금융통화위원회가 금융시장 경색에 증권사 등에 자금을 지원하면서도 이 조를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조항 대신 제64조 금융기관에 대한 여신업무 조항을 우회해서 자금을 공급한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상황이 발생하면 최종대부자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고, 도덕적 해이를 줄이기 위해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 영리기업 여신이 정치적 부담과 시비가 뒤따를 수 있어서 연준법을 참고해 정부의 의견을 듣는 것을 제언했다. 제80조의 영리기업 여신이 제64조 금융기관 여신으로 둔갑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도 했다.

한은법에는 다른 국가에는 없는 조항도 있다. 바로 제25조 손해배상책임이다. 금통위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한은에 손해를 끼친 경우 모든 위원은 연대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한은이 설립되기 전 1949년 조선은행이 일반 상업은행 기능도 하고 있었는데 부실 대출이 상당히 많았다. 이에 금통위원의 책임감을 고취할 필요가 있어서 손해배상 책임을 명시했다고 조항의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국내 다른 법이나 외국 중앙은행법에도 유사한 규정을 찾기가 어렵고, 실제로 발동될 가능성도 없다고 주장한다. 또, 현재 금통위가 한은 업무나 운영, 관리에 대해 지시 감독하지 않아 이 조항은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는 데 6년이라는 시간을 들였다. 법률을 다루는 사람들, 법을 개정하는 정치권 등에서 이 책이 주로 활용되겠지만, 중앙은행의 운영 원리를 법률적 관점에서 볼 수 있어서 젊은 경제학도에게도 유용한 서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580쪽, 3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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