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종화 기자 = 한국은행이 빗발치는 외부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회사채·기업어음(CP) 직매입에 대한 거부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한국은행법 제80조의 해석상 불가하고, 신용위험이 있는 회사채와 CP를 매입하는 것은 국민의 혈세에 손실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다.

또 실무 단계로 내려오더라도 한은이 과연 회사채를 매입하기 위해 기업분석에 나서야 하는 기관인지의 문제도 있다.

10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한은은 전일 회사채와 CP를 직접 매입해서 시장을 안정시키라는 외부의 요구에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한은은 우선 논란이 되고 있는 한은법 80조가 비은행금융기관에 대한 지원을 직매입이 아닌 대출에 한정한다고 해석했다.

한은법 80조는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자금조달에 중대한 애로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 금통위원 4명 이상의 찬성으로 영리기업에 여신할수 있다고 규정한다.

한은은 "회사채·CP 직매입은 실질적으로 신용대출과 같은데 이를 허용할 경우 은행에 대한 여신과 긴급여신에도 인정되지 않는 신용대출이 비은행금융기관 등에 대하여 허용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법령해석에 대해서는 한은이 법을 방패 삼아 소극적 태도를 고수하려 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경제학계의 한 관계자는 "발등의 불이 떨어진 상황을 해결하려면 한은이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한은의 책임"이라며 "한은이 법 개정을 통해 책임을 넓힐 수 있는데 스스로 책임을 덜기 위해 과거부터 이를 넓히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 내부에서는 법 문구 해석 이전에 국민의 혈세에 손실을 끼치는 결정을 한은이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공적인 기관인 한은을 포괄적인 의미에서 정부로 볼 수도 있지만, 대의적 성격을 가진 국회나 행정부처럼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 있는 기관은 아니라는 의미다.

회사채나 CP는 '무위험'인 국채와 달리 신용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매입하는 것은 국민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을 감수한다는 의미가 있다.

한은도 전일 입장문을 통해 "한은법상 증권매매 대상증권에 대해 국채나 정부보증채에 준하는 수준의 안전성과 유통성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는 중앙은행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발권력을 남용해 결국 국민에게 부담이 되는 손실위험을 떠안아서는 안 된다는 기본원칙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이 특수목적법인(SPV)에 자금을 지원해 간적접으로 회사채를 매입하는 방식에 정부의 보증을 고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애초부터 국회가 한은이 회사채나 CP를 매입할 수 있도록 법령을 제정했다면 한은이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었을 수 있다.

한은이 회사채를 직매입하기 위해서는 대상 회사를 선정해야 하는 실무적인 문제도 있다.

지원의 여부나 규모를 정하기 위해 한은이 회사의 재무 상태를 들여다봐야 할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회사 선정의 형평성 이슈도 불거질 수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한은은 물가나 성장률, 거시 경제 등을 살피는 곳이지, 그런 일(기업 분석)을 하는 곳이 아니다"고 말했다.

j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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