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이런 때 워런 버핏의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는 지난해 말 1천280억 달러에 달하는 현금성 자산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는 시장에 공개된 가장 최근 수치로, 이후 트레이딩을 통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번 급락장이 오기 전 버크셔가 회사 가치의 약 25%에 달하는, 버크셔 역사상 사상 최대 규모의 현금을 쌓아놨다는 것은 사실이다.

월가에서는 버핏이 '포트 녹스' 대차대조표를 자랑이라도 하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포트 녹스는 연방준비은행과 정부 소유의 금괴가 보관된 미국 최대 규모의 금고를 뜻한다.









대공황, 금융위기 급의 충격적인 3월을 보내고 그 충격파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는 4월, '버핏은 역시 버핏'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의 귀재',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이름답게 버핏의 포트폴리오를 가졌다면 분명 안도했을 것이다.

버핏 역시 에너지, 항공주, 은행주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직격탄을 투자 종목의 폭락으로 상당한 손실을 봤지만, 운용 규모에 비하면 크지 않다. 미리 현금을 크게 확보해놓은 만큼 급락장에서 추가 손실을 지킬 수 있었고, 저가 매수에 나설 수도 있다.

버핏은 지난 2월 주가가 사상 최고치 행진을 벌이던 때만 해도 조심스러운 행보로 비난을 받았다. 왜 자금을 투자하지 않고 현금으로 들고 있는지 질문이 빗발쳤다. 이제 나이가 나이인 만큼 버핏도 시대에 뒤떨어지기 시작했다고 맹비난하는 시각도 있었다.

1999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버핏이 닷컴 열풍에 주가가 치솟는 데도 이를 무시하고 지나치고 있다고 불만이 나왔다. 그리고 기술주가 주도한 급락 장세가 연출됐고 2001년 3월, 버핏은 보란 듯이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버핏은 1974년 약세장부터 2008년 금융위기까지 과거 큰돈을 벌었다. 그리고 버핏은 "남들이 욕심을 부릴 때 두려워하라", "남들이 두려워할 때 욕심을 부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리고 2008년 10월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시절 버핏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미국을 사라. 나도 산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칼럼을 쓰기도 했다. "전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진 지금이 바로 주식을 싸게 살 때"라고 주장해 시장에 일종의 신호를 줬지만, 이번에는 조용하다.

버핏은 가장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버크셔가 막대한 현금을 쌓아놓은 것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자금이 풀리도록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업어음(CP)이나 단기 회사채로는 가지고 있지 않고, 정부 국채로만 가지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버핏은 "사람들이 겁에 질려 때때로 모든 것이 얼어붙을 때, 그런 때일수록 자립해야 한다.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가끔 그런 일이 있을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와 딱 맞아떨어진다.

'현금이 왕'인 지금, 버핏은 그 돈뭉치가 마음에 들 것이다. 또 시장이 오르든, 내리든, 횡보하든 그에 알맞은 베팅을 할 수 있다.

버핏은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미국의 순풍'을 언급하며 주식 투자를 지속하라고 조언했다. 이번 급락장에서 쌓아놓은 현금을 집행했을지, 오히려 유동성을 더 확보하기 위해 매각했을지 모를 일이다. 1분기를 마친 만큼 버크셔가 앞으로 공개할 지분 보유 공시에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버핏은 무리를 따라가며 재산을 모은 게 아니라, 무리를 이끌면서 재산을 모았다. 버핏이 1천280억 달러의 현금을 가지고 앉아 있었던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버핏은 과거 수익 기회를 잃어버린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그의 방식을 지속하고 있다"고 리얼 인베스트먼트 어드바이스의 전략가는 지적한다.

버핏과 '버핏의 오른팔'로 불리는 찰리 멍거 버크셔 부회장은 이번 코로나19 위기와 비견되는 대공황부터 닷컴 붕괴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각종 위기를 몸소 경험한 월가의 드문 구루(guru)다. 숱한 위기를 겪어내고 장기 투자의 뿌리를 내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투자 실수도 있었지만, 우리 시대의 가장 성공적인 투자자로 남아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다.

버핏의 인사이트를 직접 듣기 위해 전 세계 4만명 이상이 모이는 버크셔의 연례 주총은 올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버크셔는 코로나19 여파로 5월 2일 '주주 참석 없는' 주총을 열 예정이다. 버핏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버크셔에 따르면 주주총회까지 예정된 버핏의 공식 발언은 없다. (곽세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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