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스탠드 스틸
[데스크 칼럼] 스탠드 스틸
  • 고유권 기자
  • 승인 2020.04.2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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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참 더디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기업들이 아우성치고 있어도 정부는 여전히 답이 없다. 금융시장이 그나마 숨 쉴 정도가 됐다고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솔루션을 찾지 못해 허둥대고 있는 것인지.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뚜렷한 방향과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으니 혼란만 가중된다. '흑자도산'을 막겠다는 대통령의 말만 허공을 맴돈다. 기간산업을 살릴 방책을 검토하겠다는 게 지금까지 나온 정부 입장의 최종 버전이다. 어떤 산업을, 어떤 방식으로, 언제까지 지원하고 살릴 것인지에 대한 큰 그림이라도 내놓고 세부 사항을 논의 중이라면 모를까. 기획재정부 차관이 주요 대기업 최고재무책임자를 만나고,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요 그룹사 최고경영자들과 만나 의견을 듣는다고 한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나마 이제라도 만난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바이러스 폭탄을 맞은 많은 기업은 이미 적자 수렁에 빠졌다. 어느 대기업 최고경영자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위기다"라며 생존을 걱정한다. 바이러스 사태를 극복하더라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한다. 현재의 어려움이 모두 정부의 탓이냐고 묻는다면 사실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 순간 정부와 기업은 서로 다른 길을 가야할지도 모른다. 설마 그런 상황으로까지 갈까 싶지만,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아직도 '기업지원=특혜'라는 강력한 도그마에 빠진 것은 아닌지. 천재지변에 가까운 현 상황을 과거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과거의 '족보' 정책들에 파묻혀 고민만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늘 아래 새로운 정책이 없다고 하지만 아찔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한 정부의 방역 성과는 눈부시다. 대한민국이 최고의 코로나19 방역 선진국이라는 전 세계의 칭송은 차고 넘친다. 국격을 한껏 드높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국민은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경제는.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들이 코로나19에 대응해 펼치고 있는 무자비한 기업 지원 대책과 비교하면 초라하기만 하다. 초라한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무대책이다. 하늘길이 막혀 도산 위기에 놓인 항공업에 대한 지원 대책이 어떻게 다른지만 보자. 미국은 무려 640억달러(한화 약 78조원)를 쏟아붓는다. 항공사에 290억달러를 대출해 주고, 항공사 직원들의 고용 유지에 역시 290억달러를 내놓는다. 독일은 무한대로 지원한다. 대출 보증에만 6천억유로를 쓰고, 일부 항공사에는 무한대 금융지원에 나선다. 심지어는 예약 취소로 발생하는 환불을 바우처로 지급하는 것도 추진한다. 프랑스도 우리 돈 60조원에 달하는 450억유로를 항공사 지원에 쓴다. 일본은 국적 항공사인 일본항공과 전일본공수에 2조엔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국부펀드인 테마섹까지 동원해 141억달러를 지원할 예정이다. 한국은 어떤가. 아직도 검토 중이란다.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매월 지출해야 하는 최소 고정비는 약 3천950억원과 1천890억원 정도다. 하늘을 날을 수 없으니 곳간은 점점 비어간다.

주요 선진국들이 기업들에 대규모 지원을 하는 것은 일단 버틸 수 있는 체력을 비축 시켜 주자는 차원이 강하다. 스탠드 스틸(Stand-still) 전략이다. 6개월이 됐던지, 12개월이 됐던지 천재지변에 가까운 현재 상황을 잘 버티게 한 뒤 상황이 종료되면 다시 뛰어오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당장 어려워졌다고 손과 발을 다 잘라내는 식의 구조조정 방식과는 다르다. 과감하고도 무자비하게 지원을 해 주고도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그때 가서 쳐낼 것은 다 쳐내겠다는 것이다. 대신 최소한 지킬 것만 가이드라인으로 주면 된다. 미국이 항공사를 지원하면서 내건 조건들은 매우 합리적이다. 고용은 유지하되 직원들의 급여는 일정 기간만 삭감하고, 자사주를 사서는 안 되고, 배당도 하면 안 된다. 임원들의 급여는 일정 기간 동안 제한하도록 했다. 지원금의 10%는 신주인수권 형태로 정부가 보유해 경영난이 해소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이익을 공유하도록 했다. 물론 경영난이 가중되면 정부는 이를 근거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도 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가장 높을 것이란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에 우쭐할 상황도 아니다.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성장률 전망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바이러스에 맞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제는 국민의 삶을 지킬 시간이다. 개인의 삶은 고용에서 시작된다. 기업들에 직원들 자르지 말라고 윽박지르되, 과감하게 금융을 지원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뒤 혹시라도 'V'자 반등의 축복이 내린다면 전 세계를 무대로 뛸 수 있는 기업들은 남겨놔야 하지 않겠는가.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pisces738@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0시 56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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