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엑서더스(Exodus)는 그리스어로 '빠져나가다'라는 의미로, 요셉이 죽은 뒤 모세 주도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를 탈출하는 내용이 담긴 성서의 '출애굽기'를 뜻하기도 한다. 수천년이 지난 지금 그리스어 '엑서더스'가 바로 그리스에서 재현됐다. 젊은이들은 '저먼 드림(German dream)'을 좇아 독일로 빠져나가고, 나만 살고 보자는 고위층은 난리 속에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고 있다.

그리스 상황은 어느 때보다 암담하다. 다음 달에 외부 지원을 받지 않으면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할 지경이다. 그리스가 긴축 시한을 연장해 한숨 돌릴 수 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더 강도 높은 긴축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리스 사람들이 급기야 고향을 저버릴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부터 그리스 사람들 사이에선 독일어 배우기가 유행처럼 퍼졌다고 한다. 경제가 탄탄한 독일로 건너가 안정적이고 보수가 많은 일터를 찾으려는 생각 때문이다. 실업률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그리스에선 고학력 젊은이들조차 좋은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형편이라 의사, 엔지니어, IT 전문가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이민을 생각하는 분위기다. 비단 그리스뿐 아니라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남유럽에서도 독일어 배우기가 두드러지는 추세다. 반면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수강생은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전직 장관, 선주, 변호사, 의사 등 고위층에선 경제가 쓰러지는 와중에 제 주머니를 챙기려고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 그리스의 한 언론인이 스위스 은행 지점에 거액을 예치한 그리스인 2천여명의 명단을 폭로해 사태는 일파만파했다. 고위층은 의회가 임금을 깎는 법안을 처리하는 도중에 스위스에 자금을 이체해 자신들의 배만 채운 것으로 나타나 공분을 샀다. 탈세나 재산 해외 도피 혐의로 그리스 당국이 조사 대상에 포함한 계좌가 5천여개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전직 경제부 차관인 레오니다스 차니스는 고위층 부패에 관한 조사 강도가 세지자 목을 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리스 사람들이 힘을 모아 난국을 헤쳐나가겠다고 생각하기보다 그리스를 빠져나갈 방법만 찾는 것은 안타깝다. 나아가 투자자들로 하여금 그리스 위기 해결이 요원하다는 인상도 갖게 한다. (국제경제부 이효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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